자본시장부장
어찌 된 일이냐고 해당 회사의 대표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좀 꾸며 놓아야 투자도 더 들어오죠. 초라하면 들어올 돈도 안 들어와요”였다. 뭘 하나도 모른다는 표정이 살짝 섞인 미소와 함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회사는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아 한동안 제법 잘나갔다. 기술 개발이나 제품 판매보다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IT업종이라는 강력한 테마에 주가는 꾸준히 우상향을 찍었다. 하지만 몇 번의 횡령과 배임으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회사는 추락했고, 두어 차례 사명 변경을 거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이런 부침에서 온 피해는 그 회사의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들이 상당 부분 나눠 짊어졌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사업적인 무능함에 도덕적인 해이까지 겹친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다. 하지만 투자는 회사를 보고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당시는 ‘강아지도 객장에 앉아 있으면 돈을 번다’는 우스갯말을 하던 시절, 거센 닷컴 열풍에 ‘IT’라는 단어만 업종에 추가해도 주가가 2~3배 오르던 때였다.
증시에서 흐름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는 종목을 ‘테마주’라고 부른다. 해당 기업의 실적이나 경쟁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가치투자'라는 말은 다른 세상의 얘기다. 최근 3분의 1 수준으로 가치가 추락한 가상화폐처럼, 실체가 없는 셈이다.
당시와 비교할 때, 정도는 다르겠지만 지난 1년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급상승한 우리 증시도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 특정 업종의 거센 상승세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라는 조바심을 내며 개인투자자들이 앞다퉈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경제 환경이 전환되는 변곡점이 어디일지, 숨죽이며 주시해야 할 때다.
최근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증시 급락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제 책사 출신으로 지난 40여 년간 미국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이다.
펠드스타인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증시가 벼랑 끝을 향하고 있다(Stocks are headed for a fall)’는 제목의 칼럼에서 “수년간 저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증시를 고평가 수준으로 밀어 올렸다”면서 “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오르면, 증시도 정상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그는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지적하면서 “연방정부의 빚이 증가하면, 국채 금리는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경고가 뉴욕 증시의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예언은 현실로 다가왔다. 2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전일보다 2.5% 하락한 것을 시작으로, 5일에는 다시 4.6%나 떨어지며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역시 5일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4.10%, 3.78%씩 동반 하락하며 뉴욕증시는 패닉에 빠졌다. 이번 하락을 놓고 월가에선 9년 가까이 이어진 글로벌 증시 상승랠리가 끝났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벌써부터 코스닥은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급상승했던 코스닥은 미국발 금리 충격에 전날 4.59% 하락 마감하며, 아시아 주요 증시지수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얼마 전 만났던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코스닥이 현 기업 가치보다는 미래 성장성에 의존하는 시장이라지만, 지금은 ‘남이 사니 나도 산다’, ‘오르니깐 사야 한다’는 따라가기식이 너무 심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경향이 특정 업종의 쏠림현상을 가져오고, 시장의 취약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증시가 커다란 변동성을 보이는 지금, ‘업종’보다는 ‘기업’을, ‘기대’보다는 ‘가치’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