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⑨ 모양만 봐도 나이를 안다

입력 2018-02-0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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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몇 살이니?” 또는 “그분 연세가 어떻게 되지?” 사람들끼리는 나이를 물어볼 수 있지만 대답을 할 수 없는 동물이나 무생물은 여러 가지를 따져 추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소나 개의 나이는 이빨의 마모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1966년 석가탑을 보수하려 해체하다 발견된 현존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간행 연대를 751년 이전으로 보는 것도 당시 사용된 종이와 서체, 쓰인 글자 등을 연구하여 알아낸 결과이다.

만년필도 이런 식으로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몇 년 전 나는 전화와 함께 전송된 만년필 사진 한 장을 받았다. 6·25 전쟁 중 희생된 전사자 발굴 현장에서 나온 만년필인데 그 연대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의 만년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초 일본이 만든 것이었다. 뚜껑의 맨 위까지 올라온 클립의 위치, 몸체 위와 아래 끝이 팽이 모양인 것은 당시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년필의 특징은 군복에 끼울 수 있게 클립이 거의 뚜껑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짧다. 군복 상의 주머니에 흙이 들어가지 않게 덮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짧은 클립을 밀리터리 클립이라고 했다. 일본과 독일에선 금으로 펜촉을 만들지 못하게 해 크롬, 니켈 등으로 펜촉을 만들었는데 이때의 펜촉을 워 타임(war time) 펜촉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전쟁 아닌 시기는 어떻게 구분할까? 역시 클립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클립은 1905년부터 장착되기 시작했으므로, 클립이 있으면 1905년 이후라고 보면 된다. 주의할 점은 클립이 있으면 1905년 이후가 맞지만, 없다고 해서 무조건 1905년 이전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05년 이후에도 여성용 만년필은 클립이 없었다. 당시 여성의 상의엔 주머니가 없어 클립이 필요 없었다. 또 남성 상의도 클립이 보편화할 때까지는 꽤 오래 주머니가 없었다.

▲1890년대 후반의 워터맨 만년필. 실용적인 처음 만년필과 비슷하다.
클립 다음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플라스틱 재질인가 여부이다. 본격적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년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24년부터다. 그 전엔 고무와 황을 섞어 열을 가해 만든 경화(硬化)고무로 만년필을 제조했고 대부분 검은색이었다.

그러던 중 1921년 파커사가 내놓은 빨간색 만년필이 큰 성공을 거두며 유행을 선도했다. 플라스틱 만년필은 이 성공에 대한 셰퍼사의 반격이었다. 셰퍼사가 채택한 것은 빨간색의 보색(補色)인 옥(玉)녹색이었다. 플라스틱 재질로만 낼 수 있는 색깔이다. 그러니까 어떤 만년필이 아무리 오래돼 보여도 옥녹색이라면 1924년 이후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질 다음으로 볼 것은 위와 아래가 살짝 가늘어지면서 뾰족한 유선형(流線型)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는 1929년부터 나타난다. 이전의 만년필은 위와 아래가 평평하거나 한쪽만 뾰족했다. 이 모양은 때마침 불어온 아르데코와 함께 크게 유행하였다. 불세출의 명작 파커51(1941년)과 몽블랑 149(1952년)는 모두 유선형인데 대성공을 거두자 그 모양과 배치를 모방한 것들이 있다.

파커51처럼 펜촉이 숨겨진 형태라면 1941년 이후, 검은색의 몸체에 밴드가 여러 줄이 있어 몽블랑 149처럼 보이면 1952년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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