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증권업계의 이유 있는 각자대표 시대

입력 2017-12-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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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증권업계 오랜 고질병 중 하나가 ‘짧은 최고경영자(CEO) 임기’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업계 특성상, 3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것. 취임한 후 직원들과 인사하고 업무 파악 및 적응 좀 하다 보면 1~2년이 훌쩍 지나가고, 이후 새로운 사업 좀 시작해 볼까 하면 어느덧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각자대표 체제’이다. 임기는 짧지만, 분야별로 전문가인 각자 대표를 내세워 관련 사업을 집중적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보겠다는 의도에서다.

KB증권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올 초 합병 당시 각자대표 체제가 되면서 전병조·윤경은 사장은 단 1년간의 임기만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들의 거취에 대한 불투명과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리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은 수장이라 하더라도 경영 성과를 내기에 통상 임기보다도 3분의 1밖에 안 되는 기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KB증권은 최근 윤경은·전병조 각자 대표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특히 두 대표가 담당한 부문 모두 올해 양호한 실적을 거둔 점이 분야별로 전문가를 대표로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을 검증해 준 셈이다. KB증권의 올해 3분기 누적(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4조3384억 원, 영업이익 2482억 원, 당기순이익은 1320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6.4%, 162.2%, 83.0% 늘었다.

윤경은 사장은 현대증권과 솔로몬투자증권에서 대표이사를 거쳐 신한금융투자 트레이딩그룹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금융투자업의 주요 핵심 업무를 두루 경험한 업계 전문가다. 전병조 사장 역시 KB투자증권에서 IB총괄 부사장과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대우증권 IB부문 대표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전문성을 보유한 장점이 있다.

미래에셋대우 역시 조웅기 사장이 홀세일과 IB 분야를, 마득락 사장이 자산관리(WM) 분야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408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36.7% 증가했으며, 매출액과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5.3%, 126.1% 늘었다. IB, 위탁매매, WM 등의 부문별로도 호실적을 거뒀다.

이 외에도 앞서 5월에는 리딩투자증권이 김경창 전 현대자산운용 대표를 영입하며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했다. 김충호 대표가 IB 등 종전 주력사업 부문을 운영하고 김경창 대표는 경영관리 부문을 관리하고 있다. 이어 6월에는 신영증권이 신요환 사장을 영입하며 원종석 대표이사와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키로 했다.

이처럼 단독대표에서 각자대표 체제로 변경하는 증권사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은 분야별 전문가들이 경영진으로서 역량과 경험을 더 잘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책임경영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브로커리지에 의존해 오다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는 증권사들에는 어쩌면 전문성을 발휘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각자대표 체제가 필요한 셈이다. 어찌 보면 지난해까지 어려웠던 국내 증권업계 입장에서는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어줄 CEO의 주인의식과 그에 따른 실질적인 전략이 절실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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