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가지 않은 길’이 있어야 한다

입력 2017-12-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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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다시 또 연말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았던 해가 한 번이나 있었을까 싶지만 2017년을 보내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이제 어떤 사람들을 잊거나 지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홀가분해지고 싶고 편해지고 싶고 넉넉하고 너그러워지고 싶어진다. 소설가 박경리의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홀가분함은 넉넉함, 너그러움과 서로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한 해를 돌아보면 나름대로 이룩한 성취와, 못다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한다. 이 한 해 동안 나에게 ‘가지 않은 길’이 있었던가. 아니 한 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행로에는 많은 길이 있었다. 그런데 지나온 길이나 걸어온 길보다 가지 않은 길, 궁금하고 아쉬운 길이 더 많은 것 같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쉽고 명쾌한 언어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무슨 글이든 삶과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어렵게 쓴다. 쉽게 쓰는 것은 쉽게 사는 것만큼 어렵다.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소설가 박완서(朴婉緖·1931~2011)다. 박완서가 타계 1년 전에 발간한 에세이집의 제목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였다. 같은 제목의 글에서 그는 6ㆍ25전쟁으로 공부가 중단된 것,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소설가로 성공했는데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고 썼다.

이어, “나는 누구인가? (중략)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라고 썼다.

박완서의 경우는 일부러 학문의 길을 가지 않은 게 아닌데도 그 길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을 종종 표시해왔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더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그 길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는 “이윽고 토니오 크뢰거는 양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갔다”는 말이 나온다. 멀리 저편의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제 갈 길을 걸어갔다는 뜻이다. 그가 간 길은 예술가의 길이었고, 저편의 가지 않은 길은 평범하고 건강한 시민의 길이었다.

‘가지 않은 길’은 삶에 긴장과 활력을 준다. 음악교사와 국어교사로 만난 남편과 아내는 30여 년간 함께 살다가 환갑을 지나 소설가와 화가가 됐다. 그들은 달라진 남녀, 새로운 부부다. 방송인으로 살던 사람, 신문기자로 살던 사람이 은퇴 후 화가로 데뷔하고 전시회를 여는 것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프로스트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자신은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가지 않은 길’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수 있고 때가 되면 되살아나는 기억일 수도 있다. 상처와 기억이 없는 사람의 삶은 사막과 같다.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 길을 부정하기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 길의 의미와 보행을 살펴보고 들여다보는 일이다. 사람은 ‘가지 않은 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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