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VS 러시아, 감산 합의 놓고 엇박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포함한 비OPEC 산유국이 내년 말까지 원유 감산 시한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진행 중인 감산을 유지하는 쪽으로 합의가 났지만, 출구전략을 놓고 산유국들은 기 싸움을 벌였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정례회의에서 산유국들은 내년 3월까지인 감산 기한을 연말까지로 9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동시에 내년 6월 회의에서 합의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감산 기한 연장에는 합의했으나 출구전략을 놓고 산유국들은 눈치 경쟁을 벌였다. CNBC에 따르면 비OPEC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가 감산 기간 연장에 주저하며 OPEC 카르텔에 균열을 예고했다. PBC의 헬리마 크로프 애널리스트는 “지난 5월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과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같이 걸어나갔는데 정례회의 전날인 29일에는 따로 걸어나갔다”며 “그들이 보인 행동에는 많은 뜻이 함의되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팔리 장관이 매우 높은 수위의 압박을 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러시아가 출구전략을 고심하는 이유는 미국의 셰일 오일이 걸림돌로 작용한 탓이다. 미국 셰일 오일 생산량이 사상 최고치를 찍자 러시아의 석유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잃을까 초조해하고 있다. 로스네프트, 가즈프롬네프트 같은 러시아 석유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3월에서 기한을 9개월 더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전문가들이 감산 연장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크로프 애널리스트는 “OPEC 회담은 러시아가 이끄는 사이코 드라마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번 회담을 완전히 장악했다”며 “회담에 참여한 모든 나라가 러시아를 이대로 두어도 될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비OPEC 회원국임에도 앞서 OPEC 카르텔에 기꺼이 합류했다. 유가 하락이 경제에 큰 타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내려앉았다. 그런데 산유국들의 감산 이후 유가가 50달러대로 안착하자 러시아가 다른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채산성이 맞아 현재 50달러대를 유지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OPEC과 엇박자 신호를 보이는 것이다.
사우디는 50달러대에 만족하지 못한다. 사우디는 60달러는 돼야 안정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는 사우디가 작년에 내놓은 탈 석유화 정책 ‘비전2030’ 추진과도 관련이 있다. 32세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작년에 사우디의 장기 경제 성장 비전으로 탈 석유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유에 의존해온 국가 경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날 감산 합의가 발표되기 전 바클레이스의 마이클 코헨 애널리스트는 “모든 장관들은 자신들의 대통령, 총리, 국왕 등을 기쁘게 할 소식을 전달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이는 노박 장관과 팔리 장관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회담 막바지에 산유국들은 시장이 내년까지 기대감을 품게 할 만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추측대로 산유국들은 ‘9개월 감산 연장’에 합의했으나 이날 국제유가 상승은 제한적이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17%(10센트) 오른 57.4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