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다시’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든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이때의 다시는 ‘하던 것을 되풀이한다’거나,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 혹은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한다’는 의미이다.
‘다시금’이라는 말도 있다. “농부는 다시금 괭이를 다잡았다”거나 “잊은 줄 알았던 그 일이 다시금 생각났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런 예이다. ‘다시금’은 ‘다시’를 강조한 표현일 뿐, 뜻은 ‘다시’와 완전히 같다.
그런데 ‘다시’라는 말이 엉뚱한 곳에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전화로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 주고 있다. “육이공 다시 삼칠오칠사삼 다시 오○○….” 이때의 ‘다시’는 무슨 뜻이며 어디서 온 말일까? 뜻은 짧은 한 줄을 긋는 ‘-’부호이고, 일본어 ‘ダッシュ[dashi]’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줄표’이다.
그런데 우리 언중은 ‘줄표’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다시’라고 한다. 필자가 만난 어떤 사람은 이때의 ‘다시’ 또한 우리말의 ‘다시’로 알고서 “육이공 다시 삼칠오칠사삼 다시 오○○…”을 “‘육이공’에다가 다시 ‘삼칠오칠사삼’을 덧붙이고 거기다 다시 ‘오○○’을 덧붙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었다. 말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데에서 의미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그렇게 변한 의미가 사회에 하나의 약속으로 자리 잡으면 통용어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지만 맨날 하는 일을 다시 한다면 지루한 삶이다. 더욱이 잘못을 다시 저지른다면 그것은 낭패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며칠 후면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게 된다. 꼭 다시 하고 싶은 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잘 분간하여 한 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