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노동방식·새로운 리더십 요구돼
“인공지능(AI)이 당신의 상사가 될 것입니다”
세드리크 나이케 지멘스 부회장은 기술 혁명이 노동 환경에 이처럼 직접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15일 열린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규모, 일자리 성격, 일자리의 질 등 모든 것이 급변할 전망이다.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계급, 즉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빠르게 늘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본지가 지난달 창간 기획 ‘D·O·A(Dead or Alive), 미래를 선점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선 AI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한다는데 방점을 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한겨레 주최로 15일 열린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은 이러한 담론을 고민하는 장이었다.
AI 시대를 둘러싸고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로봇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국가를 위해 인간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기술의 진화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노동 현장은 월가도 예외가 아니다. 로봇이 월가에서 직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채권중개인협회, 증권투자자 등 업계를 대표했던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곧 이 자리를 AI가 차지할 것이라고 비관론자들은 주장한다.
비관론에 대응한 해법도 다양하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세를 제시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설립자는 로봇세를 제안했다.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밖에도 노동조합 강화, 누진세 확대 등이 AI 시대의 부작용을 막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지멘스의 나이케 부회장은 기업 차원에서 관리자들의 역할 변화가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부하 직원이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상명하복 구조는 AI가 상사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의미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는 직급 개념이 없어지고 중재자, 코치, 멘토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다 같이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첩성, 투명성, 신뢰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리더들이 먼저 주도해야 한다고 나이케 부회장은 강조했다.
스탠딩 대표는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대표적인 찬성 논리는 수요중심의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봇에 의해 생산된 제품이 소비돼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길 경우 이러한 순환이 멈출 수 있다. 따라서 소비를 가능케 하는 기본소득을 손에 쥐여주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반대 논리도 만만치않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반박이다. 또 기술진보가 대량실업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제 자체도 틀렸다고 반대쪽에서는 주장한다. 1차 산업혁명 직후 실업과 임금 하락을 걱정했으나 고용 직종의 변화가 있었을 뿐 전체적인 일자리가 줄지 않은 것이 그 근거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조합을 강화하는 게 방편으로 꼽힌다. 가디언의 폴리 토인비 칼럼니스트는 분배의 악화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조합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영국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그는 비판했다. 현재 영국의 노조 조직률은 20%대 초반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사회, 기업, 노동계가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멘스의 나이케 부회장은 “로봇의 발전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꾸준한 재숙련화와 훈련, 새로운 노동방식과 새로운 지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즉 인류의 번영에 공헌하는 AI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