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달쏭思] 제화시(題畫詩)와 화제시(畫題詩)

입력 2017-11-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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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는 예로부터 그림을 그린 다음에 여백에 그림과 어울리는 필체로 시를 써넣었다. 한 화폭에 담긴 시와 서예와 그림이 잘 어울려서 하나의 작품을 이룰 때 그런 작품 혹은 그런 작품을 그린 작가를 일러 ‘시•서•화 삼절(詩•書•畵 三絶)’이라고 했다.

이때의 ‘절(絶)’은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 끊겨서 더 이상은 없다’는 의미로 ‘매우 빼어난 상태’를 뜻한다. 매우 빼어난 노래라는 의미의 ‘절창(絶唱)’의 ‘絶’이 바로 그렇게 사용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이다.

시•서•화 삼절은 서양에는 없고 한•중•일 등 한자문화권 국가에만 있는 독특한 사상이자 양식인데 이처럼 그림 안에 써넣는 시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화제시(畫題詩)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화제시와 제화시(題畫詩)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비슷한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畫題詩와 題畫詩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중국어는 ‘동사+목적어’의 형태로 서술하는데 우리는 ‘목적어+동사’의 형태로 서술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밥을 먹는다’는 형태로 서술하지만 중국어에서는 ‘吃飯(吃:먹을 흘, 飯:밥 반)’, 즉 ‘먹는다 밥을’이라는 형태로 서술하는 것이다. 따라서 ‘畫題詩’는 ‘題詩를 畵한다’는 뜻이고, ‘題畫詩’는 ‘畵를 題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에 그 그림에 맞는 시를 제하여(지어) 쓴 시가 題畫詩이고, 어떤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시를 그린 그림 속의 그 시’ 라는 뜻의 ‘畫題詩’인 것이다.

송나라 이래로 기능이 출중한 화가를 뽑기 위해 더러 시를 제시하고 그 시 속의 정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경우가 적잖은데 이 경우의 시가 바로 ‘畫題詩’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그림이 먼저이면 제화시이고, 시가 먼저이면 화제시이다. 시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 후 시를 지어 넣기도 하는 그림이 진정한 문인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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