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달쏭思] 시전지(詩箋紙)

입력 2017-10-30 10:47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서울 종로구 인사동 희수화랑에서 소지도인(昭志道人) 강창원(姜昌元) 선생의 100세 기념 서예전이 열리고 있다. 강창원은 일찍이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에 살면서 당시 중국의 개혁사상가 양계초(梁啓超), 화가 제백석(齊白石), 문학가 호적(胡適) 등을 가까이에서 접했고, 양소준(楊昭儁)으로부터 서예 수업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유희강 손재형 김충현 김응현 임창순 이가원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77년 홀연히 LA로 이민을 떠난다. 이후 도시의 은자가 되어 평생 서예를 낙으로 살았는데 올해로 100세를 맞은 그의 청고한 작품이 인사동 작은 화랑의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는 것이다.

엽서의 두어 배 크기밖에 안 되지만 어느 대작보다 더 기품이 있고 격조가 높은 작품도 있다. 실지로 편지지에 쓴 편지도 전시장에 나왔다. 글씨도 글씨지만 문장의 격조가 높아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메모를 하거나 시를 쓰거나 편지를 쓰는 작은 종이를 ‘시전지(詩箋紙)’라고 한다. 각 글자는 ‘글 시(poem)’. ‘찌지(끼워 넣는 조각 종이) 전’, ‘종이 지’로 훈독한다. ‘箋’은 ‘竹’과 ‘?’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인데 ‘竹’은 대나무 조각, 즉 죽간을 뜻하고, ‘?’은 원래 ‘작다(小 혹은 少)’는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물이 적으면 ‘얕을 천(淺)’, 작은 쇠붙이인 동전은 ‘돈 전(錢)’자가 되고, 옛날에는 조가비를 돈으로 사용했으므로 조가비(貝)가 적으면 천(賤)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箋’은 당연히 작은 ‘대나무 조각’이라는 뜻이다. 죽간에 오자를 수정하거나 덧붙일 말을 넣을 때 사용한 작은 대나무 조각이다. 전주(箋注), 오늘날로 치자면 각주에 해당하는 뜻이다.

나중에 ‘箋’은 작은 메모지라는 의미로 인신(引伸)되어 ‘시전지(詩箋紙)’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시전지에 쓴 고격의 작품을 보러 100세 기념 서예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시기를 권한다.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