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사ㆍ분양권 불법 전매로 선분양제 명분 약화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주택시장에 후(後)분양제가 화두다. 후분양제는 말 그대로 집을 다 지어놓고 분양하는 것을 일컫는다.
원래 완성된 주택을 소비자에게 파도록 하는 게 원칙인데 정부는 사업계획만 있으면 사전 분양을 허용해줬다.
억대의 고가상품을 견본주택 하나 지어놓고도 판매를 할 수 있었으니 이런 제도가 없는 외국인에게는 선뜻 납득이 안 됐을 게다.
왜 우리는 선(先)분양제를 시행했을까. 명분은 주택 공급 촉진이다.집을 다 짓고 난 뒤 분양을 허용하면 주택업체 입장에서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금력이 없는 업체는 주택사업이 불가능해 그만큼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반면에 선분양제를 시행하면 공사비 조달이 쉬워져 사업이 한결 수월해진다. 결국 선분양제는 주택업체에게 부여한 특혜인 셈이다.
선분양제는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된다고 주택업체는 주장한다. 미리 분양을 하기 때문에 완공시점까지의 물가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아 그만큼 분양가가 싸진다는 거다.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가격구조를 뜯어보면 선분양이든 후분양이든 분양가 차이는 별로 나지 않는다. 외형상 선분양이 싼 것처럼 보이나 미리 납부하는 중도금 등에 대한 이자를 감안하면 비슷하다. 집단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충당하는 형태는 더욱 그렇다. 후분양 체제에서는 주택업체 명의로 공사비 등을 대출받는 구조여서 이자만큼 분양가가 올라간다. 그러나 선분양은 계약자 명의로 대출을 받기 때문에 개별로 이자를 부담하게 된다. 간혹 중도금 대출 무이자 조건 분양도 있으나 실제로 분양가에 다 이자가 포함돼 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분위기에서는 선분양이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주택업체가 분양시점의 시장가격을 감안해 분양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집이 완공된 후 시세는 분양가보다 높아진다. 선분양으로 인해 소비자가 돈을 번 셈이다.
주택시장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후분양제가 유리하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굳이 사전에 분양을 받아 둘 이유가 없다. 경기가 악화되면 분양가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선분양은 공사비용 등을 입주 예정자가 부담하는 방식이고 후분양은 업체가 해결하는 구조다. 관련 비용은 소비자든 업체든 다 은행권에서 빌려 충당하는 형태다. 그러니까 대출금 이자를 분양가에 포함시키느냐 소비자가 개별로 부담하느냐의 차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요즘 후분양제 얘기가 나오고 있을까.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먼저 분양권을 놓고 투기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분양권 거래가 극성을 부려 가격이 부풀려지고 있다는 거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거래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하나의 분양권이 여러 차례 손바뀜이 일어나면서 프리미엄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게 결국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후분양제 도입 얘기가 불거진 것이다.
부실시공도 후분양제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후분양은 소비자가 부실공사 여부를 따질 수 있고 부실 주택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어 그만큼 품질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후분양이 소비자에게 더 유리한 제도로 판단된다. 위치나 가격 등이 같은 조건이라면 품질이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품질 평가는 완공주택에서만 가능하다는 소리다.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선분양이 더 인기를 끌 수 있으나 지금처럼 안정기에는 후분양제가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집이 남아돌면 집을 골라잡을 수 있고 잘 안 팔리면 분양가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완공주택을 싸게 사는 입장이니 소비자는 당연히 후분양제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주택업계는 후분양제를 싫어한다.
초기 사업자금이 많이 들고 소비자 눈높이가 자꾸 높아져 여기에 걸맞는 양질의 완성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아서다.
자금문제를 보자. 여유 자금이 없는 업체는 예전만큼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기가 어렵다. 지금의 선분양 구조에서는 부지 매입계약만 해 놓은 상태에서도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사업 수익성만 있으면 부지 대금은 대출을 통해 조달할 수 있고 공사비는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후분양제는 적어도 부지 매입대금 정도는 갖고 있어야 사업이 진행된다. 공사비야 건설업체와 이익을 나눠먹는 조건을 달아 외상 공사를 한다 쳐도 부지는 자기 돈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는 주택사업이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신용이 낮은 업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위 디벨로퍼라고 하는 시행사가 대거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야 뭐만 있어도 개발사업이 가능하다는 속어가 나올 정도로 개발붐이 일었지만 후분양제에서는 돈이 없으면 사업이 불가능하다.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는 경우 시공사가 외상 공사도 해주지 않을 게다.
양질의 주택업체만 살아남을 거라는 소리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결코 나쁘지 않다. 건설공사는 대형업체가 담당하나 실제 사업주는 이름 없는 시행사가 태반인 게 지금의 주택개발업의 현주소다. 건설사가 사업 전반을 컨트롤하지만 시행사를 무시 못한다. 시행사의 실력에 따라 주택품질도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주택 내부 평면 구조가 좀 이상한 경우 시행사의 자질을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 후분양제를 시행해야 부작용이 적다. 주택공급도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동안 주택정책이 업체 위주로 이뤄진 게 많았으나 앞으로는 소비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 그래야 주택 품질도 향상되고 업체들의 폭리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후분양제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고가 상품인 주택을 짓지도 않은 상태에서 팔도록 규제를 허용한 게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