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이 또한 지나가면?’-다시 떠오른 작년 이맘때의 주문(呪文)

입력 2017-09-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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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작년 이맘때, 정확히는 1년하고 열흘 전, 엄청 무덥던 날이 계속될 때, 이 난(欄)의 첫 줄은 “지독한 이 여름, ‘이 또한 지나가리’가 입에 붙었다”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는 페르시아의 전설에서 비롯된, ‘절망에서는 희망을 찾고, 좋을 때는 절제하라’라는 지혜로운 주문(注文)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위와 상황에 지쳐 이 말을 주문(呪文)으로 사용했다. 더위에 저주를 퍼붓고는 그 무렵 매일매일 첫머리 뉴스였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처리에 미적거리던 당시 대통령을 ‘씹었다’. “대통령은 더위가 스스로 지나가듯 우병우 문제도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간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대통령의 뭉그적거림이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하고 분노케 한다”고 썼다.

1년 사이 많은 것이 지나갔다. 상상치도 못한 것들이 우리를 짓밟고 넘어갔다. 물러갔던 더위는 다시 찾아왔다가 또 지나갔고, 무능했던 대통령은 참담한 모습으로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껍데기일 뿐, 알맹이는 남아 있다. 더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정권 담당자들의 독선은 전만 못지않고, 어느 면에서는 더 편파적이고 배타적이다. 달라진 것은 겉에 드러나는 ‘쇼잉’, 그 때문에 볼거리는 많아졌다. 하지만 껍데기가 새로워진 만큼 알맹이의 혼탁함, 소란함과 지저분함은 눈에 더 띈다.

인사는 끼리끼리 나눠먹고 주고받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코드인사, 캠프인사, 보은인사가 되풀이됐다. 그러다가 몇 명이나 낙마했나? 그러고도 전 정권을 마냥 비난할 수 있나? 실패한 인사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과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모든 것은 지나갔다. 무엇이 달라졌나?

역사에 책임을 지는 결정, 후세를 위한 숙명이라며 발표된 정책이 소수 몇 명의 ‘소신’에 의해 결정된 것은 더욱 소름 끼친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무엇을 남기려고 저렇게 서둘러 대못을 박아대나? 못 박을 자리에 박는 거는 맞나? 아무리 대못이라도 뽑히지 않는 못은 없다는 걸 모르나? 혹시나 뽑힐 때 뽑히더라도 그때까지 내 이문, 우리 이익만 챙기려는 더러운 욕심이 ‘소신’으로 포장된 건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생긴다.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주겠다’더니 정작 자신들은 여러 채를 갖고도 전혀 불편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말을 맞췄나? 변명도 비슷하다. 극소수의 상위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난해온 사람들이 그 극소수에 속해 있는 현실은 또 무언가?

작년 이맘때는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됐다. 우병우를 거쳐 최순실 등 몇 인물이 나중에 등장했지만 사건의 얼개는 간단했고, 결과를 점치기도 쉬웠다. 당시 대통령의 거취에만 신경 쓰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전방위(全方位)로 펼쳐진 국내 문제에 북핵과 중국, 미국의 트럼프가 어디로 튀느냐도 걱정하고 눈치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작년에 쓴 글의 마지막 줄은 미국 시인 랜타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의 한 구절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계절은 바뀌고, 대통령이 고집을 부려도 세상은 변한다는 믿음을 다지고 싶어서였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내년 이맘때는 어떨까? 미리 물어본다. 작년의 주문(呪文)을 질문으로 바꿔본다. ‘이 또한 지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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