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길 사이에 선 신여성 작가
원산 루씨여고보를 졸업한 후 이화여전 성악과에 진학했다가 문과로 전과해 3년간 수학했다. 1933년 개벽사 기자로 들어가 ‘신여성’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수필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34년 12월 ‘중앙’에 단편 ‘가등(街燈)’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등단했다. 개벽사에 1년간 다니다가 카바레 여급이 됐다고 하는데(김학철의 회고) 이 시기부터 희곡작가 박영호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은 정확하지 않다. 재취 결혼으로 전실 자식이 있었으며(최정희의 회고),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이 있었다.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전실 자식과의 갈등이나 모성애에 대한 갈등, 처첩갈등(‘여인명령’, ‘도장’, ‘연지’ 등)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과 계모가 된 작가의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938년에는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1940년에는 신세기사 기자로 활동했다.
1934년 ‘가등’으로 등단하여 1946년까지 10편의 단편과 중편 2편, 장편 1편, 꽁트 3편 등 16편의 소설을 발표하였고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수필과 잡문들을 남겼다. 발표된 소설로는 ‘도장’, ‘계산서’, ‘여인도’, ‘숯장수의 처’, ‘여인명령’, ‘이별기’, ‘매소부’, ‘연지’, ‘돌아가는 길’, ‘탕자’, ‘처의 설계’, ‘춘우’, ‘승리’ 등이 있다. 해방 후엔 ‘창’ 한 편을 남겼으며, 1946년 말경 남편과 함께 월북했다.
이선희 작품 속의 백화점 여점원이나 카페 여급, 매소부(賣笑婦) 등은 식민지 시기 도시화, 상품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직업여성들이다. 이들의 생활에는 가부장적 이념들과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얽혀들어 가기 시작하는데, 이선희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실을 연달아 그려내는” 작가라고 소개하는 장덕조의 평가도 이선희가 포착한 세계의 새로움을 지적한 말이었다.
여주인공들의 삶은 주로 전락(轉落)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화려한 불빛’ 속에서 ‘캄캄한 어둠’을 직면하고 있다. ‘집’과 ‘거리’에서의 삶 모두에서 변화되기 시작한 여성의 일상을 그려낸 이선희의 작품은 도시적 공간과 여성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