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이흑산… 간절한 ‘주먹의 외침’

입력 2017-08-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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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슈퍼웰터급 챔피언 압둘레이 아싼. 한국이름은 이흑산(李黑山). 카메룬 군인 출신의 난민복서.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챔피언 벨트라도 있으면 쉽게 추방당하지 않을 것 같아 매일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다.”

압둘라예 아싼(Abdoulaye Assan)

카메룬 출신 난민 복서.

2015년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복싱선수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선수단을 이탈, 난민 신청을 했다.

압둘라예 아싼은 카메룬공화국의 수도 야운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는 가봉으로 떠났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형제들을 만난 기억도 없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열여섯 살에 킥복싱을, 2002년 열아홉 살엔 복싱을 시작했다.

2004년 스물한 살의 압둘라예 아싼은 군대 복싱선수단 입단 제의를 받고 입대했다.

하지만 민간 주최 복싱대회에 군의 허락 없이 참가해 우승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 그에게 돌아온 형벌은 가혹했다.

감옥으로 보내진 그에게 두 달간 폭행이 이어졌다.

“군인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한 다음 양팔을 붙들고 벨트로 채찍질을 했다.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면 발로 차고 밟았다.”

가혹한 그의 인생에서 복싱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꿈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출전으로 탈출의 기회가 생겼다.

아싼은 “대회 전 연대장이 ‘도망칠 궁리하는 애들이 있다고 들었다. 어느 나라에 있든 너희를 찾아낼 것이고 너희는 모두 사살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죽더라도…”

선수단을 이탈한 그는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프랑스어로 난민인정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6개월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예전 SNS를 통해 지인의 지인이 운영한다는 복싱체육관이 한국에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체육관이 있는 충남 천안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복싱을 시작했다.

2개월가량 지나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난민 불인정 결정 통지였다. 재차 난민 신청을 했다.

강제송환 위기에 놓였다. 추방된다면 고국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은 흘러갔다.

▲이흑산(압둘레이 아싼·34)이 지난 5일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한국슈퍼웰터급타이틀매치 1차방어전에서 상대방 선수를 향해 펀치를 날리고 있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이흑산(李黑山)

한국슈퍼웰터급 챔피언 압둘라예 아싼의 한국 이름이다.

이흑산은 타이틀 1차 방어전을 앞두고 지난달 27일 난민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이달 5일 춘천에서 열린 방어전을 5회 KO로 승리했다.

대전료의 절반은 지역의 난치병 어린이에게 전달했다.

두 달 안에 WBA 아시아 웰터급 타이틀전을 갖기로 프로모터에게 연락도 받았다.

하지만 스폰서 및 일자리 문제로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희망이 또다시 절망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이흑산은 아직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싸운다.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현실과 싸운다.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복싱밖에 없다.

이흑산은 눈앞에 맞닥뜨렸던 죽음 앞에서 뒤돌아섰다.

죽음을 저만치 뒤에 놓고 배수진으로 싸운다.

밀리면 더 이상 내일은 없다. 그는 오늘도 샌드백을 두드린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 난민을 신청한 이는 모두 7500여 명. 이 가운데 1% 정도인 98명만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 사진•글=최유진 기자 strongma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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