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상대가 쓰는 수(數), 즉 상대의 속셈과 계산에 대해서 응수를 잘 해야 이길 수 있다. 축구, 배구, 야구 등 스포츠 게임도 상대의 속셈과 계산인 ‘수(數)’에 대해 응수를 잘 해야 이길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응수를 ‘응할 응(應)’자와 ‘셈 수(數)’ 자를 사용하여 ‘應數’라고 쓰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응수’는 ‘應數’라고 쓰지 않고 ‘술잔 따를 수(酬)’자를 사용하여 ‘應酬’라고 쓴다. ‘應酬’라는 말의 어원이 상대방이 따라주는 술잔에 대해 나도 따라주며 주거니 받거니 응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앞서 살핀 대로 ‘酬’는 ‘수작(酬酌)’의 의미를 가진 글자이고, 酬酌은 사실상 남을 속일 양으로 부리는 나쁜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작 특히 ‘개수작’에 대한 응수는 현명하게 잘 해야 한다. 본래 이런 의미였던 應酬가 나중에는 사용의 범위가 확대되어 바둑이나 장기에서처럼 상대방의 ‘수(數)’에 대응한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남과 접촉하며 산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사실은 응수의 연속이어서 맘에 없는 일이라도 응수해야 할 때가 허다하다.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에도 참석해야 하고, 보내고 싶지 않은 선물도 보내야 할 때가 있으며, 칭찬하고 싶지 않지만 애써 칭찬하는 인사말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까닭에 현대 중국어에서 ‘應酬’는 아예 연회나 파티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應酬話’라는 단어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뜻하게 되었다.
어쨌든 사람은 이런저런 응수를 잘 해야 한다. 특히,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응수는 수작을 부리는 사람에 대한 응수보다 더 잘 해야 한다. 선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응수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내, 내 자식에 대한 응수부터 잘 해야 할 것이다. 응수의 비결은 아마도 진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