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한자를 몰아내고 완전한 한글 전용을 이루기 위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한자어마저도 순 우리말로 풀어서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물론 순 우리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좋다. 인터체인지(interchange)를 ‘나들목’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 등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미 정착한 한자어 중에는 순 우리말로 풀어쓸 경우 본래 한자어의 의미나 품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위(胃)’를 ‘밥통’이라고 할 경우, 바로 동물이 연상되어 뜻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의 품격은 현격하게 저속해진다.
순 우리말로 풀어쓸 경우 원래의 한자어와 같은 뜻인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경우는 더더욱 많다. ‘산재(散在)’라는 단어가 그런 경우이다. 글자대로 훈독하자면 ‘흩어질 산’, ‘있을 재’이므로 散在는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는 말은 “문화재가 흩어져 있다”는 뜻인데 누군가가 일부러 흩어놓아서 흩어져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것은 누가 흩어 놓아서가 아니라, 옛날에 있던 것들이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서 결과적으로 흩어져 있는 상태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냥 ‘흩어져 있다’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이다.
‘군데군데 있다’와 ‘이곳저곳에 있다’는 말로 대체하자니 ‘드문드문 있다’, 즉 “어쩌다 조금씩 있다”로 이해되어 본의 아니게 그 양이 적다는 의미가 따라붙게 된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는 말로 대체하고 보면 ‘없는 곳이 없이 어디에라도 있다’는 뜻이 되어 이 또한 산재가 가진 본래의 뜻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결국 아무리 풀어써도 원래 ‘散在’가 가진 의미를 완전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한자는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려고 애쓸 문자가 아님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