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 한계 넘어선 입주 물량으로 매매ㆍ전세값 하락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대부분의 시장이 그렇듯 주택시장도 공급 과잉 앞에서는 기를 못 편다.
수급 논리가 안 통하는 투기판 장세도 넘쳐나는 물량한테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주택업체들의 절제없는 아파트 물량 공세를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온갖 처방을 동원해 극도로 위축됐던 주택시장을 어렵사리 안정궤도에 올려 놓았더니만 돈 벌이에 혈안이 된 업체들의 공급 폭탄으로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것 같아서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금 화성 동탄 신도시의 주택시장은 입주물량 폭탄을 맞고 휘청거리는 분위기다.
일정 기간 입주 아파트가 넘쳐나면서 매매·전세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사례는 더러 있었으나 동탄처럼 도시 전체가 장기 불황 위기에 놓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동탄은 2015년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나 올해부터 내년까지 완공되는 아파트가 엄청나다. 입주 물량이 수용 한계를 벗어난 규모여서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동탄은 지난 2년 간 1만8000 가구 정도 입주를 맞았고 올해 1만3000가구, 내년 2만2000가구 더 쏟아진다.
앞으로 2년 동안 3만5000가구에 달하는 입주 예정자들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고 동탄에 분양받은 새 집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소리다.
전세는 그런대로 거래가 되겠지만 기존 주택 매매시장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아 새 집으로의 이전에 차질이 생길 여지가 많다.
입주가 제 때 안 돼 빈집이 많아지면 주택시장은 급속히 냉각되면서 매매· 전세가격을 떨어뜨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니 제값을 받을 수가 없다는 소리다.
평수가 클수록 형편은 더 어렵다. 전용면적 109㎡(33평)의 경우 전세가격이 지난해만 해도 2억5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올해 들어 1억9000만원까지 떨어졌다. 매매가가격도 마찬가지다. 분양가보다 500만~1500만원 정도 싼 매물도 눈에 띤다.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아 분양가보다 싸게라도 털고 나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수요자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입주 물량이 출하되면 동탄 주택시장은 장기간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도시 안에 직장이 없는 전형적인 위성도시 형태여서 다른 지역보다 수요 창출이 힘들다.
수도권에 동탄과 비슷한 처지인 신 개발지가 여럿 있다. 김포·시흥·평택이 대표적인 도시다.
김포의 입주물량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2만6000가구 쯤 되고 시흥은 2만5000가구 규모다. 이들 도시는 현재로도 이미 포화상태다. 여기에다 신규 물량이 출하되면 예견되는 상황은 뻔하다.
평택도 이미 공급 과잉 상태를 맞았지만 최근 고덕신도시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가동되면서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하지만 앞으로 고덕 신도시 내 아파트 물량이 대거 쏟아지면 이를 배겨낼 재간이 없다.
문제는 금리 인상 여부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한국은행도 기준 금리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금리 인상은 곧 주택 수요 위축을 불러 온다.
최근 수출이 호조를 이루고 있는데다 내수 경기도 회복되는 기류여서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 인상의 부담이 좀 줄었다. 국가 경제가 좋은 시기에는 금리를 올려도 파급 영향이 그만큼 적어진다.
8월 중에 발표하겠다는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내용도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높은 폭으로 늘어난 가계부채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 같아서다.
물론 입주 물량 폭탄으로 인해 주택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경우 정부 맘이 바뀔 수 있다. 주택경기가 죽을 것 같으면 금리 인상이나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기가 좀 부담스러워지지 않겠느냐는 소리다.
어찌됐던 서울을 제외한 전반적인 주택시장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의 일부 아파트값이 급등세를 보이긴 했어도 그동안 주택업체들이 외곽에다 쏟아낸 아파트가 완공되면 상황은 달라질 게 확실하다. 지금의 동탄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주택시장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가수요가 판을치는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역은 과잉 공급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수도권 시장이 너무 얼어붙으면 서울도 온전할 수가 없다.
입주 폭탄이 우려되는 지역은 지금부터라도 대비를
해 놓는 게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