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상회담 12일 만에 초강수…“개정협상 적극 대응 나서야”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 2주 만에 한미 FTA 개정을 위한 특별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자 정부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미 FTA 개정 협상 논의는 없다고 했지만, 불과 2주 만에 개정 협상 요구에 당황한 모습이 역역하다.
트럼프 정부는 대선 때부터 한미 FTA 개정 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우리 정부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뒤늦게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을 선임했지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았고 한미 FTA 협상에 나서야 할 통상교섭본부장은 아직 인선조차 안 돼 부실 협상 우려가 높다.
14일 청와대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방미 수행경제인단이 향후 5년간 128억 달러(약 14조6000억 원)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ㆍ항공기 구매 등 5년간 224억 달러(약 25조5000억 원) 등 총 40조 원에 이르는 선물을 줬음에도 물밑협상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지금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국내 정치용 발언이라며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트럼프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가 “미국의 일자리를 없애는 거래(job killing deal)”라고 맹비난했다.
지난 4월에는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한미 FTA를 받아들일 수 없는(unacceptable), 끔찍한(horrible) 협상으로 규정하고 개정 협상(renegotiate) 또는 종료(termination)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수세적 방어에만 급급해 미국 쪽에 이미 많은 것을 내줬음에도 미국 쪽은 실리는 실리대로 챙긴 뒤에 여전히 ‘개정 카드’를 무기로 내세우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통상교섭본부장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여야 대치로 국회에 표류하면서 한국은 통상협상을 이끌 수장도 없이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돼 정부 대응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과거 장관급이었던 통상교섭본부장은 박근혜 정부가 통상 기능을 외교통상부에서 산업부로 넘기면서 사라졌고 현재 통상 기능은 산업부의 통상차관보가 총괄하고 있다.
미국이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합의한 바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는 한 당사국이 협정을 종료할 의사를 서면으로 일방 통보하면, 180일 경과 후 협정 효력이 종료된다. 미국이 최후의 카드로 폐기를 통보할 시 한국 동의와 무관하게 한미 FTA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전문가는 “미국이 FTA 폐기 카드를 압박용으로 활용하면 한국은 사실상 거절하기 어렵다”며 “미룰 때까지 미루기보다 지금이라도 개정 협상 국면을 인정하고 협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