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48. 김흔(金昕)의 딸

입력 2017-07-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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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조신 꿈 속에 나타나 人生無常 일깨워

김흔(金昕)의 딸은 신라의 진골(眞骨) 귀족 여성이다. 김흔은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증조부는 이찬 주원(周元), 할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소판 종기(宗基)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장여(璋如)이다. 김흔의 딸은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의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조에서 조신(調信)과 관련되어 나온다. 조신은 세달사(世逵寺)의 승려였는데, 절에 다니러 온 태수 김흔의 딸을 보고 매혹됐다. 그래서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가서 그와 맺어지기를 몰래 빌었다.

그러기를 여러 해가 지났고, 김흔의 딸은 다른 이와 혼인을 하였다. 조신은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그립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 사이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조신의 꿈에서 김흔의 딸이 웃으며 말하였다. “제가 전에 당신을 본 후에 줄곧 사모하였는데, 부모의 명을 어길 수 없어 다른 사람과 혼인하였습니다. 지금 당신의 반려가 되어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조신은 매우 기뻤다. 함께 조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녀 5명을 두고 40여 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은 가난 앞에 무력하였다. 나물죽으로도 끼니를 잇지 못하여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사방으로 떠돌아 다녀야 했다. 떠돌아 다닌 지 10여 년이 되었을 때, 15세 된 큰아이가 길에서 굶어 죽었다. 통곡하며 아이를 길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네 자녀를 거느리고 우곡현(羽曲縣)에 이르러 길가의 띠풀을 얼기설기 엮어 집을 만들어 살았다. 부부는 이제 늙고 병들었다. 부부가 굶주려서 일어나지조차 못하자 열 살짜리 딸아이가 밥을 빌러 돌아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파서 우는 딸아이를 두고, 부부는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김흔의 딸이 말하였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젊고 아름다웠지요. 사랑으로 산 지 50년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음식도 나눠먹고, 옷도 나눠입으며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늙고 병들어서 날이 갈수록 추위와 배고픔이 절박해집니다. 남들에게 당하는 수모도 더욱 견디기 힘듭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 하는데, 부부의 사랑이 무슨 소용입니까? 차라리 헤어져서 살 길을 도모합시다.”

조신은 김흔의 딸이 하는 말을 듣고는 매우 기뻤다.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맞잡은 손을 놓았을 때, 조신은 꿈에서 깨어났다. 조신의 머리카락은 하룻밤 사이에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고, 그는 더 이상 인간 세상에 뜻이 없었다. 이광수의 ‘꿈’은 이 설화를 소재로 쓴 소설이다.

진골 귀족인 김흔의 딸은 조신에게 성불(成佛)만큼이나 까마득한 꿈이었다. 조신은 꿈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꿈에서 깨고 난 후에는 영원 같은 사랑이 순간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았다. 속(俗)은 성(聖) 앞에서 부질없었던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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