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전 정권 지우기’만이 能事인가

입력 2017-07-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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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수석비서관급으로 일했던 ‘어공’(어쩌다 공무원) 한 사람은 요즘 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다닌다. 박근혜 정부 이후 녹색성장을 팽개친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녹색성장 정책이 흔들린 것을 ‘기이한 일 (bizarre)’이라고 평가한다며 전 정부가 추진한 일은 무조건 배제하고 부인하고 보는 정권의 속성을 비판하고 있다.

녹색성장은 환경(Green)과 성장(Growth) 두 가지 가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에너지, 환경 관련 기술, 산업에서 미래 유망 품목과 신기술을 발굴해내고 기존 산업과의 상호 융합을 시도해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세계에 인지도가 높은 이 브랜드를 더 키워도 시원찮을 판에 어렵게 유치한 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GCF) 본부의 출범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네 마네 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찬밥 취급을 했다. 통상 국제기구를 유치하면 자국인이 20~30% 정도 진출하는데 우리의 경우 GCF에 고위직 진출은커녕 이사회에서도 밀려났다고 한다. 한국 주도로 설립한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GGI)도 비슷하다.

우리가 녹색성장을 팽개친 사이 중국은 지난해부터 ‘녹색성장 5개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유산을 상속받지 않으려 한 데 이어 문재인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던 녹색성장위원회를 환경부의 지속가능발전위와 합쳐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로 운영키로 했다.

지속가능발전위는 사연이 길다. 지속가능발전은 1992년 리우환경회의와 2002년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합의해 만든 개념이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은 지속가능발전을 ‘경제 성장, 사회 안정과 통합, 환경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발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위는 유엔 권고에 따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2002년 출범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말하며 녹색성장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격상하는 대신 지속가능발전위를 환경부 산하로 보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지속가능발전의 대체 개념으로 내세우면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이를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으로 정의한 바 있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중 ‘사회 안정과 통합’을 제외한 것은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의 지속가능발전위 격상은 노무현 정부 시절로의 환원이자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앙갚음이거나 지우기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전 정권 지우기로 나라를 운영하려 하는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환경 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돼야 하며 일관성, 독립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다. 녹색성장도 ‘MB(이명박)의 나쁜 유산’이라고 버릴 게 아니라 그동안의 성가(聲價)를 바탕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반대로만 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의 일에서도 유지 또는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없진 않을 것이다. 정권 출범 과정에 시간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을 최소화하고 일부 부처의 경우 기능 조정을 전제로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조직과 일은 계승할 것을 찾으면서 사람을 쓰는 방식은 전과 달라지게 해야 한다. 선거운동 캠프 사람들을 중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야말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기용인지는 더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대장까지 거치고 방산업체를 기웃거릴 정도로 공직의식이 미발육 상태인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하려 하는 것 등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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