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딱하게 됐다. 그토록 BBK에 매달렸건만 선거 결과는 참패로 끝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통합신당은 처음부터 패배의 전략을 선택한 자충수의 결과였다. 선거 기간 내내 BBK 네거티브 말고는 한 게 없었다. 그것이 통합신당의 선거 전략이었다. 결국 ‘한방’이 ‘헛방’으로 끝나버렸다. 대선에서 후보의 정책제시는 간 곳 없고 상대방 헐뜯기로 시작해서 헐뜯기로 끝난 선거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는 대선 패배가 아니다. 대선 이후 통합신당의 움직임을 보면 패배하고도 그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곳에 전가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공당(公黨)으로서 취할 바가 아니다. 깨끗하게 졌다고 인정하는 게 공당으로서의 도리다.
통합신당에게 대선 패배는 매우 쓰라린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패배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심으로 나타난 민심이반이다. 선거 결과 통합신당이 우세한 지역은 호남지역뿐이다. 그 밖의 지역은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거나 우세한 지역이었다. 통합신당이 가장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바로 수도권 표심이다.
전통적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항상 진보성향이 강한 정당에 표를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이명박후보가 얻은 전국 평균 지지율은 48.7%였다. 그런데 서울이 53.2%, 경기 51.9%, 인천 49.2%로 수도권 지역 모두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서울은 그 중에서 가장 높았다. 수도권의 이 같은 득표율은 뭘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현 집권층에 대한 수도권 민심의 이반이다.
왜 수도권 민심이 집권층을 떠났을까. 그것도 처음으로 보수정당에게 절대다수의 표를 던져주었을까. 한마디로 무능한 좌파 정권이 국정을 파탄시켰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이 앞장서서 현 집권층을 벌주려 했다. 이 대목이 통합신당에서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겸허히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통합신당은 그러나 이런 민심 이반을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아직도 국민들이 그들을 찍어주겠거니 하고 막연한 기대심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선후에도 여전히 BBK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BBK에 온 힘을 다 쏟아 붓고도 참패했는데 아직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래가지고서는 이미 떠난 민심을 다시 불러모으기 힘들다. 최악의 경우 호남지역에서만 지지를 받는 지역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집권당이 다시 살아나려면 기존 기득권을 모두 버려야 한다.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선행돼야 한다. 여당으로서 프리미엄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안하무인격인 그간의 태도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국민의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다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한번 죽는 게 다시 사는 길이다.
그동안 집권당은 얼마나 오만했던가. 국민들을 함부로 경멸하고 자기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그래서 모욕받은 사람이 심지어 목숨까지 끊기도 했다.
국익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그들의 좁은 식견만 내세웠다. 한미FTA반대가 대표적 사례다. 이 FTA협정은 분명 국익에 부합하는 협정인데도 무조건 반대했다. 대통혈 후보경선에 나왔던 한 통합신당 의원은 “FTA협정을 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도 했다.
그는 또 대선 과정에서 자기당 지지가 부진하자 “국민이 노망했다”고 극언까지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노망한 국민’이 멀쩡한 정신으로 통합신당을 징벌했다고 봐야 한다. 지금도 국민을 바라보는 통합신당의 분위기가 국민을 노망했다고 보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 하다. 아직도 자기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래서는 내년 총선에서 대패한다. 빨리 진영을 추슬러 다음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
통합신당은 정쟁을 일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간의 잘잘못을 제로베이스의 조건에서 다시 한번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전국정당으로서 새 정권과 선의로 경쟁하는 정책정당으로 평가받는 게 통합신당이 앞으로 생존해나가는 길이다. 통합신당은 지금 생사기로에 서있다. 어느 것이 사는 길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기 바란다. 죽는 게 사는 길이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