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정치경제부 정치팀장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을 직접 발표한 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애초 문 대통령과의 질의응답 시간은 없다고 사전에 공지된 상황이었다. 이 말은 당연히 질의응답이 없을 줄 알았던 청와대 관계자뿐만 아니라 기자들을 당황케 했다.
문 대통령은 또 그동안 신원 검증을 마친 정식 비표가 있는 기자들만 회견장에 참석할 수 있던 관례도 없앴다. 임시 출입 비표인 방문증을 가진 기자들도 출입을 허용해 오히려 정식 비표를 가진 대부분의 기자가 회견장에서 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을 정도이다. 물론 대통령 행사 시 경호 문제로 휴대전화 등 무선통신을 차단하지만, 이날은 차단하지도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이런 파격적인 소통 행보는 이날뿐만 아니라 취임 이후 계속 이어졌다. 출근길 시민들과의 인증샷, 청와대 참모진과의 오찬 후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境內)를 산책하는 모습 등은 국민의 대통령으로 다가선 모습이다. 특히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추모사를 마친 유족 김소형 씨를 안아주는 모습은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청와대 직원과의 3000원짜리 식사,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과의 만남 등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짧은 기간이지만, 국민에게 던져준 의미는 크다.
특히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청와대 상춘관에서 만난 문 대통령의 행보는 협치와 국민의 대통령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상춘재 바깥에 마련된 티테이블에 먼저 와서 기다리며 5당 원내대표를 맞이했고, 비표와 출입증도 달지 않도록 격식을 파괴한 점도 최근 소통 행보와 맥을 같이한다. 무엇보다 애초 예정했던 시간보다 40여 분을 훌쩍 넘겨 격의 없이 자유롭게 토론한 점은 문 대통령의 협치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문 대통령의 파격 인사도 눈에 띈다. 이번 인사에서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주요 공약 사항으로 꼽았던 적폐 청산 중 검찰과 재벌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같이 국민에게로 다가온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에 박수를 치고 싶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을 ‘재벌 = 대기업’으로 봐 자칫 경제 근간을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대기업 위주로 세계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너 위주의 대기업 경영 활동과 불투명한 지배 구조는 당연히 개혁해야 한다. 또 재벌 오너가를 위한 계열사나 관계사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한 기업 활동도 규제를 통해 근절해야 할 적폐의 대상이다. 특히 재벌들의 부당한 기업 지배 구조와 재벌 오너가나 인척들의 과도한 중소업종 침해는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재벌 개혁을 곧 대기업 개혁으로 동일시해 대기업의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해서는 안 된다. 아직 우리나라 대기업 중 세계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맞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없을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위상은 글로벌 기업과 상대하기에는 경쟁력이나 규모가 많이 뒤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재벌 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 재벌과 대기업을 동일시한 잘못된 규제 강화로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 혁명 준비에서도 이 같은 재벌 개혁을 대기업 개혁으로 동일시해 과도한 규제를 한다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며 글로벌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 이종 기업 간 협력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규제와 관련법 정비 미비로 인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선진국보다 5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대기업 참여와 육성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문 대통령의 파격 소통 행보처럼 1기 경제팀도 재벌 개혁을 하되,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파격 개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