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한 남성이 인터넷 카페에 200일째 사귄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다. 댓글이 10여 개 달려 있다. 내용은 모두 한 가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물어보지 말고 기습 키스를 하라고 한다. 왜 물어보냐고, 분위기 잡고 하면 된다. 키스를 왜 허락받고 하느냐 등등.
과연 그럴까. 친밀한 관계에서는 마음대로 키스를 해도 되는 걸까? 아니다. 친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신체를 일방적으로 접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위자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이는 상대방의 사적인 경계(private boundary)를 침해한 행위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
‘경계를 침해한다?’ 무슨 뜻일까?
국가 간에 국경선이 존재하고,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듯이 개인 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적인 경계가 존재한다. 경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경계에는 신체적인 경계를 비롯하여 물리적, 언어·정서적인 경계가 있다. 개인 간 친밀도나 상대방과의 신뢰 관계에 따라 경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다르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계를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계를 일방적으로 침해당했을 때 사람들은 불편함이나 위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친구의 학용품을 함부로 가져가는 아동, 잠자는 자녀의 뺨에 마구 뽀뽀하는 부모, 친구에게 욕을 하고 친구의 사진을 동의 없이 단톡방에 올리는 청소년 등등.
이때 중요한 점은 행위자의 의도보다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이지만,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 그래서 경계존중교육이 필요하다. 미국, 독일 등 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시민교육(市民敎育)으로 가르치고 있다. 즉 경계존중은 인권 존중의 시작이자, 관계 맺기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상대방과의 경계를 얼마나 존중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