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간의 사상 첫 스탠딩 TV토론은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난타전이었다. 사실상 1위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공세가 집중돼 ‘문재인 vs 비문재인’의 1대 4 구도나 마찬가지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 후보와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도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공약, 증세 문제 등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긴 했지만 후보들의 국가 비전이나 의미 있는 정책 대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19일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선 후보 KBS 초청 토론회’에서 정치·외교안보·교육·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안보와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놓고 양보 없는 대결을 벌였다.
이날 토론은 대본 없이 스탠딩 방식으로 ‘맨손 토론’이 첫 시도된 점은 긍정적이었다는 평가다. 긴장감도 커졌고 토론 배틀을 통해 각 후보의 순발력, 위기 대처능력의 민낯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토론 주자가 5명이나 되는 데다 시간총량제 도입으로 특정 후보에게 공격적 질문이 집중되고, 감정 싸움에 격한 표현과 근거 없는 물고 뜯기가 이어지다 보니 유권자들이 면밀하게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볼 기회는 적었다.
특히 자유토론에서 지지율 선두 후보인 문 후보에게 북한 주적 개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으라는 추궁이 집중됐다. 안 후보도 대북송금 문제와 햇볕정책 계승 여부에 대해 따져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생소한 외교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 안보 정책에 대한 대결이라기보다는 이념 성향을 보여주는 데 그쳐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부 폐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안 등 교육복지공약, 증세 조세 형평성 강화 등을 놓고 불꽃 설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내용은 부실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해법이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며 차별화를 꾀한 후보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토론이 초반 선거 판세를 가를 수 있을지, 지지율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YTN 라디오를 통해 “재미라는 측면에서 기여를 했지만, 형식적인 면에서 시간총량제는 유력 후보들에게 집중되면서 대답이 제한됐고, 서서 하는 스탠딩 토론은 그 의미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대변인도 “스탠딩이 5자가 되다 보니 난타전이 힘들었다”며 “2자나 3자로 줄였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했고, 정용기 한국당 수석대변인도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여론 조사 1, 2위 후보에게 질문이 쏟아지다 보니, 해명하다가 시간이 다 사용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두 번째 TV토론을 통한 각 후보들의 이해 득실도 엇갈렸다. 안보관을 난타당한 문 후보의 전략적 모호성은 중도 지지층에게는 실망감을 안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후보의 대북송금특검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도 호남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막말 퍼레이드를 이어간 홍 후보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설거지는 여성의 몫’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는 했지만 여성층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반면 유 후보와 심 후보는 일관성 있는 발언과 준비된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이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져 문 후보를 머뭇거리게 한 유 후보는 대선토론 직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자 “국민의 안목은 정확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문 후보와 안 후보 측은 대체로 만족한다고 자평했다. 문 후보는 토론회를 마치고 “시간이 부족했던 것 말고는 토론은 만족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손금주 대변인은 “대본 없이 서서 하는 2시간 토론에서 후보들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고, 단연 안철수 후보만이 합리적인 콘텐츠와 비전, 그리고 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