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우리 술 양조장에 필요한 위생기준은?

입력 2017-04-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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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을 전통 방식으로 빚는 소규모 양조장들이 겪는 현실적인 큰 어려움 중 하나는 ‘강화되는 위생 기준’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썹(HACCP)이라는 엄격한 식품위생 기준을 전통술 제조장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매출액 100억 원 이상 업체는 올해까지, 50억 원 이상은 2020년까지, 나머지 업체는 2025년까지 해썹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해썹 기준에 맞추어 양조장을 개조하려면 소규모인 경우라도 1억 원 내외의 비용이 소요되고 전통술 제조업체의 상당수가 연 매출 1억 원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2025년에는 거의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술도 식품이기 때문에 위생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느 정도까지가 적절한 것일까? 외국의 사례와 전통술의 특성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포도주나 맥주 등 유럽의 전통 있는 소형 양조장들은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지만 제약회사나 현대식 식품공장과 유사한 위생관리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숙성 공간에는 먼지와 곰팡이가 그대로 있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사케나 증류식 소주 양조장도 비슷하다. 어떤 일본 양조장은 오래된 술맛을 유지하기 위해 양조장 천장의 거미줄을 치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백주 공장의 위생 관리 상태는 아주 나쁘다. ‘교’라고 불리는 발효조가 있는 발효실 벽면과 천장에는 시꺼먼 곰팡이가 그대로 있다. 숙성실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오래된 곰팡이가 술맛을 좋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보건당국의 기준으로 보면 당장 영업정지 감인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중국 백주는 세계적인 명주로 대우받고 맛도 좋다. 반면 엄격한 위생 관리 감독하에 만들어진 한국의 막걸리와 소주는 생수 가격의 싸구려 술로 팔린다.

여기에다 우리의 전통술 빚기는 해썹 등 현재의 위생 관리 기준과 잘 맞지 않는다. 전통술 빚기에 사용되는 누룩은 익히지 않은 생곡을 자연 접종시켜 만든다. 생곡 속의 여러 곰팡이와 균, 그리고 공기 중의 수많은 균류가 자연적으로 접종되어 누룩이 만들어진다. 즉 누룩은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곰팡이와 효모 등이 함께 있는 복합체이다. 이런 누룩을 사용하는 우리 술 빚기에서 잡균을 차단하는 방식의 위생 관리 기준은 거의 의미가 없다. 우리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누룩에 있는 곰팡이나 효모를 이길 정도의 강력한 잡균이 오염되면 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맛있는 술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잡균이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 술의 위생 관리는 어떠해야 할까? 자연 발효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토인 “깨끗하게 하지만 소독하지는 않는다”가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갈한 가정집에서의 김치나 장 담글 때의 위생 관리 기준이면 충분하다. 가정집에서 담근 김치나 된장, 고추장을 먹고 탈이 났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전통 우리 술도 김치나 된장과 같이 자연 발효 식품이고 예전에는 다 집에서 빚어 마셨다.

술이 국민 건강을 해치는 이유는 싸구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술에 들어간 인공 첨가물 때문일 것이다. 국민 건강을 고려한다면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고급 술 시장이 커지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우리 술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는 소규모 양조장에 맞는 위생 관리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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