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도 이와 같은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쟁점이 된 판결이 선고됐다. 다세대주택 한 개 호실을 분양받은 직후 인접지에서 시작된 다른 다세대주택 건축으로 인해 일조와 조망이 침해된 매수인인 원고가 분양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분양 당시 인접지에서 건축이 될 것을 분양업자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청구 이유로 한 사건이다.
1심 법원은 분양 당시에 분양업자는 인접지에서의 건축 예정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원고에게 고지하지 않았고, 이는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원고가 감정 등의 방법으로, 이로 인한 손해배상 액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부분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소송법상 배상 액수에 대한 입증책임 부담이 원고에게 있는 이상 부득이한 판단이다.
그 후 항소심에서는 손해 액수에 대한 감정이 이뤄졌고, 이를 근거로 피고에 대한 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됐다. 판결 결과를 보면 1억5000만 원이라는 분양금액에 비해 인정된 배상금액은 3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 금액은 원고의 체감 손해액에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 감정 등 소송 비용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소액이다. ‘불리한 사실을 감추고서도 일단 거래를 성사시키고 보자’는 식의 부도덕한 거래 관행에 철퇴를 내릴 수 없는 우리 재판 제도의 한계를 실감케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위자료 액수를 대폭 상향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