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고유재산 운용 과정에서 불법 브로커와의 거래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회사는 물론 감독당국에서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제1부는 장외주식 브로커에게 A증권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을 매매하고 1500만원을 받은 A증권사 B모(44)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2014년 A증권 PI2팀(고유재산운용 부문)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던 B씨는 회사가 보유한 장외주식을 불법 브로커 C씨에게 매도해주고 현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0월 A증권에서 퇴사한 이후에는 그 역시 불법 장외주식 브로커로 변신해 중개수수료 3억원 가량을 취득했다.
장외주식을 사인 간에 사고파는 행위는 민법상 적법한 거래다. 그러나 수수료를 받고 장외주식 거래를 중개하려면 금융위원회에서 금융투자업 인가를 얻어야 한다. 공식 중개업자가 아닌 자의 중개 행위는 현행 자본시장법에 위배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명 ‘청담동 주식부자’ 사건으로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까지 나서서 불법 주식 브로커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증권사가 고유재산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이들 브로커에게 지속적으로 일감을 줄 수 있다는 데에는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A증권은 B 차장이 자진 퇴사한 후로도 이러한 불법거래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A증권 관계자는 “B 차장이 C씨를 일반 거래자로 보고하고 일대일 거래를 하면 회사로서는 C씨가 주식을 누구에게 수수료를 받고 중개해줄지 알 수 없다”고 항변했다.
복수의 금융당국 관계자 역시 “현재 고유재산 거래를 특정 자격을 가진 누군가와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일반인과 거래라면 특별히 문제 삼기 어렵다”며 “제재나 개선과제 제출 대상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는 검사를 나가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한 대형 증권사 준법감시인은 “고유재산 매매 시 지켜야 할 내규 등이 마련된 회사라면 최소한 인가 받은 금융투자업자, 부동산 중개인 등과 거래해야 한다는 것쯤은 정해놓았을 것이고, 만약 내규가 없더라도 그게 상식적인 처사”라고 꼬집었다.
또한 비금융투자업자와 일대일 거래를 한다고 해도 증권사가 금투협 K-OTC등 공인된 시장을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시장에서 ‘큰 손’인 증권사들이 개인으로 둔갑한 불법 브로커들에게 막대한 일감을 주고 있는데도 이를 그냥 놔두는 것은 범죄행위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청담동 주식부자’ 등의 사건 재발을 막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