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대선시계] “우리도, 노무현처럼…” 뒤집기 한판 노린다

입력 2017-01-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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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제’ 현실화될 경우 예측불허 상황 올 수도

최근 여론조사를 통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문재인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총장의 ‘2강 체제’가 사실상 거의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귀국 이후 설 연휴 전까지 야권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제대로 다지지 못하거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계기로 보수층이 재결집할 경우 새로운 범여권 대선주자가 대안으로 등장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탄핵 인용 후 두 달 내 대선이 치러진다면 그 당시의 국내외적 기류를 타고 어떠한 변화의 바람이 불지도 장담할 수 없다. 20일(미국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취임과 북한의 예측불허 상황도 국내 대선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충분한 변수다.

실제 과거에도 지지율 기반이 약했던 제3의 후보가 실제 대선 무대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승기를 거머쥔 전례는 있다. 16대 대선을 앞둔 2001년 하반기. 당시의 대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40%가 넘은 지지율을 얻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였다. 대선 해인 2002년 초반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50%까지 치솟으며 청와대행을 확정짓는 듯했다. 하지만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노무현 후보가 소위 ‘노풍’을 타고 민주당 경선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면서 대선 판세의 지지율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3월 말 이후에는 두 후보의 각축전이 펼쳐졌다. 결국 그해 대선은 노 후보의 역전 드라마로 끝이 났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한 자릿수 지지율로 시작했다”면서 “여권 2위는 항상 차지했다. 열심히 해서 지지율을 올리겠다”며 대권 도전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17대 대선에서도 초반 여론조사와 사뭇 다른 대결구도가 펼쳐졌다. 대선을 한 해 앞둔 2006년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청렴 이미지로 높은 평가를 받은 고건 전 국무총리가 3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지만 그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을 기점으로 야당의 이명박 후보, 박근혜 후보에게 차례로 1위 자리를 내줬다. 결국 17대 대선 승리 역시 여론조사 후발 주자인 이명박 후보가 차지했다. 이후에도 2007년 ‘문국현’ 2012년 ‘안철수’을 통해 늘 대선판에서는 깜짝 스타가 출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긴 했지만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현실화될 경우 19대 대선 결과는 그야말로 예측불허 상황이 될 수 있다. 결선투표제는 최고 득표자가 일정한 득표수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상위 득표자 두 명이 다시 한번 선거를 치르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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