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29. 안정숙의공주(安貞淑儀公主)

입력 2017-01-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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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과 정략결혼한 고려 태조의 맏딸

안정숙의공주(安貞淑儀公主, 생몰년도 미상)는 낙랑공주(樂浪公主) 혹은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으로도 불린다. 태조의 맏딸로 어머니는 신명순성왕태후 유씨이고, 남편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김부(金傅)이다.

공주와 경순왕의 혼인은 전형적인 정략혼이다. 후백제 견훤의 침공 등으로 나라를 보전하기 힘들어진 경순왕은 935년 태조 왕건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 의사를 밝혔다. 그해 12월 경순왕이 신하들을 이끌고 개경에 도착하니 왕건은 크게 환영하며 낙랑공주와 혼인시켰다. 동시에 태조 자신도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의 딸(태조의 제5비인 신성왕태후 김씨)과 혼인하여 이중으로 혼인 관계를 맺었다.

망국의 임금 부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공주의 이후 삶은 어둠이었을까? 고려사에 기록된 김부의 지위는 나쁘지 않았다. 태조는 김부를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正丞公)으로 봉했다. 또 신란궁(神鸞宮)을 지어주고, 녹봉 1000섬을 주었으며, 신라를 경주라 하여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신란궁이란 글자 그대로 풀면 ‘신령스러운 난새의 궁’이란 뜻으로 자국을 버리고 타국에 와서 사는 경순왕을 난새에 비유해 붙인 이름이다.

▲경순왕릉

여기서 궁금한 것은 당시 김부에게 아내가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서에는 931년 태조가 신라를 방문했을 때, 경순왕의 아내로 3남1녀를 낳은 죽방부인(竹房夫人) 박씨의 존재가 보인다. 김부의 고려 귀순 당시 죽방부인의 생사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당시 태조 왕건이 호족연합책으로 29명의 비를 취했는데, 비록 고려왕은 아니지만 태자보다도 지위가 위에 있었던 김부가 아내를 더 취하지 못했겠는가? 고려 왕실의 다처제는 김부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이후 김부는 태조의 제25비인 성무부인(聖茂夫人) 박씨 소생의 공주와 또 혼인한다.

안정숙의공주는 김부와의 사이에 5남2녀를 뒀다. 부부간의 금실이 매우 좋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김석은 의성 김씨, 김건은 강릉 김씨, 김선은 언양 김씨, 김추는 삼척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975년 경종이 즉위하자 경순왕은 경종의 장인(경종의 제1비 헌숙왕후가 경순왕의 맏딸로 죽방부인 소생이다)으로서 상보(尙父)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공주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마도 이미 고인이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안정숙의공주는 태조의 딸로 신라의 왕과 혼인하여 양국의 우의를 다졌다는 점에서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5남2녀의 자식들이 잘 자라 제몫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사회가 요구하던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다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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