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소년으로 살던 별

입력 2017-01-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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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묻고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 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 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막막한 우주를 떠도는 외로운 별이다. 그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면 그게 우리의 일 년이다. 다시 새해가 되어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망을 빌었다. 그러나 60억이 넘는 인류가 지구의 몸에 보금자리를 틀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든 지구는 오늘도 아름답고 고독하게 빛난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지를 태양이 부활한 날로 보고 한 해의 시작인 설로 삼았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동지가 지나면 해가 하루에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고 했다. 노루 꼬리는 그냥, 꼬리라는 상징성 외에는 뭣 때문에 달려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작고 귀엽다. 그러나 시간의 길이를 그 무엇도 아닌 노루 꼬리에 비유했던 아름다운 인간들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장사꾼들의 별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지구는 농사꾼들의 별이었다. 아름다운 숲, 부드러운 흙, 대지를 적시는 강물, 씨앗을 퍼뜨리고 싹 틔우는 비바람, 누가 소유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이런 자연조건을 보더라도 지구는 원래 농사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숲 대신 거대 도시가 들어서고 무기와 컴퓨터와 자동차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쇠붙이와 시멘트로 뒤덮인 오늘의 지구를 생각하면 지구는 그야말로 창백하고 푸른 점이다.

누구에게나 어렸을 적 겨울은 더 추웠다. 그래도 별은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걷이를 마친 농사꾼의 별은 무 구덩이와 개울의 물고기들을 걱정해 주거나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을 다른 별로 보내주면 그만이었다. 그러고는 봄이 올 때까지 쉬었다. 그 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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