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린 정치 : 싱가포르·아르헨티나·사우디
실패한 정치는 실패한 경제를 만든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포함한 세계적인 경제 위기들은 무능한 정치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성공한 정치는 경제를 바로세울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옳은 정치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성공한 정치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고, 바람직한 가치와 정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민의를 대변하려 노력하는 정치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과 무관치 않은 이유다.
◇청렴한 정치가 바로 세운 경제모델의 교과서, 싱가포르=2015년 3월 타계한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독재자’라는 수식어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영웅’이 그것이다. 진실은 그 중간에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눈을 감았을 때 많은 외신들이 그의 업적을 줄줄이 열거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리콴유의 부고를 전하면서 “영국도 싱가포르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년 전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인구 160만 명에 불과했던 늪지대 섬이 지금은 550만 명의 인구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실업률은 2%에 불과하며 국민의 90%가 정부가 지은 집을 가지고 있고,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묘사했다. 작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를 넘어 세계 6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산유국인 카타르의 뒤를 이어 2위다.
25년 동안 집권한 리콴유는 부정 부패 척결을 국가 개혁의 1순위로 삼았다. 그는 청렴도가 경제 성장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부패행위조사국을 만들어 기업의 부정행위도 철저하게 감시했다. 대신 공무원에게 높은 수준의 보수를 보장했다. 싱가포르의 일반 공직자 임금은 한국의 6~7배에 달한다.
다만 그가 청렴을 강조하며 신상필벌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자유를 억압당해야 했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리콴유를 ‘동남아시아의 작은 히틀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일으킨 아르헨티나=2015년, 12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병자’라는 오명을 씻게 됐다. 2014년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디폴트 직전이었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떨어지고 물가는 30%씩 치솟았다. 2007년 남편의 뒤를 이어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에도 연금 대상자를 늘리는 등 포퓰리즘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일삼아 유권자로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
지난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기업인 출신의 시장주의자다. 선심성 복지를 끊겠다고 공언하며 포퓰리즘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마크리의 친시장 정책에 신뢰를 표시하며 앞다퉈 아르헨티나에 투자했다. 그 결과 2016년 4월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국채 입찰에는 예정된 물량인 150억 달러보다 네 배 많은 자금이 몰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같은 달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Caa1’에서 ‘B3’로 상향 조정했다
◇체질 개선으로 정면 승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 구조는 석유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정부 재정 수입의 70% 이상이 석유 수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하락하자 경제는 급격히 위축, 2014년부터 재정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114조 원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다름 아닌 정부 각료들이었다. 사우디는 지난 9월 내각 장관의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사우디 왕실은 이에 더해 국왕자문기관으로 이루어진 160명의 공무원에게도 월급의 15%를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민간 부분의 고용을 촉진하겠다는 의도였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지난해 4월 ‘사우디 비전 2030’을 제시해 석유 의존도 높은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제도 개혁,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주력했다. 여기에는 현재 22%인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30%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한 GDP 대비 중소기업 비율을 20%에서 35%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주장하는 사우디의 노력은 작년 말 극적으로 타결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이행 합의에도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