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가 여야 합의로 자신의 퇴진 일정을 결정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탄핵 정국이 시계제로 상태에 놓였다.
박 대통령은 29일 담화에서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퇴진을 결단하지 않고 국회에 공을 던진 셈이다. 이는 시간을 벌어 탄핵국면을 개헌국면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조건 없는 하야가 민심이고 국정 농단을 막는 유일한 길임에도 하야에 대한 언급없이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며 “국민과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모아 탄핵 절차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대통령은 촛불 민심과 탄핵의 물결을 잘라버리는 무책임하고 무서운 함정을 국회에 넘겼다”며 “야3당과 양심적인 새누리당 의원들과 계속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비박계 주축 모임인 비상시국회의 대변인격인 황영철 의원은 “탄핵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 결정을 국회가 빨리 내려야 한다”며 “솔직히 많은 고민이 있는데, 어떤 판단을 내릴지 당장 어렵다”고 말했다. 비주류 나경원 의원도 “야당이 일단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는데 여야가 기한을 정해서 박 대통령 퇴진 일시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즉각 탄핵을 외치던 비박계가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당초 야당은 탄핵을 위한 가결정족수인 국회의원 200명을 안정적으로 내다봤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과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40여명이 찬성표를 던지면 무리가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내달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을 세웠지만 비박계가 동요하면서 야권이 탄핵을 추진하더라도 탄핵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비박계 일부 의원의 비협조로 탄핵이 부결되면 야당은 박 대통령 퇴진방식을 협상할 때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다만 부결되더라도 부결시킨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하야를 계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새누리 안팎에서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개헌’이 화두로 떠오를 경우 대선 시계가 늦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시기가 빠를수록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유리하고, 늦어질수록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 총장이 내년 1월 하순 귀국해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선정국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