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아파트값 최고 2억 하락----시장 급냉 조짐

입력 2016-11-28 07:00수정 2016-11-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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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ㆍ전매 제한 조치에다 돈줄까지 조여 수요 대폭 감소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정부는 자주그랬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주택정책은 유독 심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부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조짐이 있는데도 미리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곪아터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강수를 두는 일이 잦다는 얘기다.

단순히 뒷북 행정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사후 약방문(死後藥方文)의 처방은 푹석 주저앉을 정도로 강도를 높인다. 한때는 시장을 뜨겁게 달궈 놓았다가 좀 과하다 싶으면 하루 아침에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완전 롤러 코스트 정책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비롯해 전국 주요 지역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11.3 대책을 내 놓았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 기준 강화와 재당첨 금지 기간 연장과 함께 청약 1순위 대상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가수요가 판을 치는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고강도 대책이 또 나왔다.

금융당국은 24일 가계부채 대책 후속책으로 분양 주택의 잔금 대출에 대해서도 일반 주택담보 대출처럼 이자와 원리금을 한꺼번에 갚도록 하는 기준을 발표했다.

대출기간 동안 대출금을 나눠 내는 이른바 분할상환 제도를 내년에 분양하는 아파트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기존 분양분은 적용대상이 아니다.

일반 주택대출에 대해서는 수도권 2월, 전국 5월부터 각각 분할상환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종전에는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구조여서 부담이 적었으나 이제는 수입이 따라주지 않으면 대출받아 집 사기가 어렵다.

이런 마당에 아파트 분양 자금줄까지 조였으니 신규 주택수요마저 확 줄어들게 됐다.

게다가 정부의 11.3 대책 이후 수요 감소로 시장이 냉각되는 분위기여서 이번 대출규제 여파는 생각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대출기준 좀 강화했다고 시장이 금방 가라앉겠느냐 하겠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대출금에 대한 분할상환제가 시행되면 웬만한 사람은 주택 구입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면 3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소유권 이전 때 대출금을 집값의 50%만 받아도 부채는 1억5000만원이다. 대출 기한이 5년이면 금리 3%를 적용한다고 할 때 원금및 이자 상환액은 대략 매달 270만원 가량되고 10년일 경우 140만원 수준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부담액은 더 늘어난다.

이를 감안할 때 여유가 없는 사람은 내집 마련의 기회가 더 멀어지고 설령 부모의 도움을 받아 주택값의 절반을 융자로 충당한다 해도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 적지 않다. 그만큼 생활이 팍팍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말이다. 주택시장은 이미 공급과잉에 따른 후유증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분양이 늘어나고 기존 주택 거래도 대폭 줄었다.11.3 대책 이후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운데 호가가 1억~2억원 가량 빠지기도 했다.

이런 국면에 정부가 매머드급 대책으로 불리는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주택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될게 뻔하다.

최근 몇 년간 분양된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완공되기 시작하면 빈집이 넘쳐날 게고 여기에 매수세까지 꺽이게 됐으니 시장 분위기는 더욱 악화되지 않겠느냐 의미다.

그동안 시장 열기가 너무 뜨거웠으니분위기를 좀 조정할 필요는 있지만 이렇게 강한 도구를 사용하면 경제 자체가 위험해진다는 얘기다.

참 희한한 정부다. 3년 전만 해도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온갖 규제책을 풀어 놓으면서 집 살 것을 독려해 놓고 이제는 주택시장을 급랭시키려 한다.

지난해 중반 주택가격이 들썩이면서 공급 과잉 징후가 나타났을 때 정부는 연착륙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분양시장 과열과 공급 과잉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의 얘기다. 유 장관은 경제부총리로 영전한 직후인 지난해 12월까지도 공급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때라도 처방책을 내놓았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게다. 공급 과잉도 그렇고 가계부채 문제도 어느 정도 진정됐을 것이라는 소리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바람에 올해도 지난해 공급 물량(다가구 구분 포함 88만 5394가구) 버금가는 주택이 인·허가 될 것 같다. 9월 현재 61만5695가구가 공급됐으니 연말까지 치면 대충 그렇게 되지 않겠나 싶다.

이렇게 많은 물량이 쏟아지도록 해놓고 주택시장을 단기간에 급냉 국면으로 몰아 넣으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동안 공급된 주택 가운데 이미 완공된 다세대·다가구주택 시장에는 공실이 적지 않다. 잘 팔리던 연립주택도 분양이 저조하다.

아파트라도 용빼는 재주가 없다. 본격적으로 입주 물량이 출하되면 상황은 뻔하다.

빈집이 지천으로 깔리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살던 집도 안 팔려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못가는 슬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금융위기 이후 몇 년간 벌어졌던 거래절벽 사태가 조만간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전체 시장이 다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다.개발잇슈가 있거나 수요가 많은 인기지역은 영향이 적겠지만 물량을 잔뜩 쏟아낸 지역은 큰 타격을 입을 확률이 높다.

다시 주택시장이 빙하의 늪으로 빠져든다면 이는 전적으로 장부 탓이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당시 담당자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으니 그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순진한 국민만 불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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