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2003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19권이나 소개된 그의 책 중 가장 최근 번역된 것은 7월에 나온 ‘발칙한 영국 산책 2(21세기북스, 박여진 옮김)’이다. 이 책에서도 최소한 한 사람을 죽이는데-아직 끝까지 읽지 않아 ‘최소한’이라고 했음- 그 전말은 이렇다.
<(경치 좋은 영국 노퍽 해안 길을 산책하다가) 어떤 여인이 데리고 나온 개가 몰캉한 어떤 것 세 덩어리를 길바닥에 떨어뜨리는 광경을 그 여인과 함께 지켜봤다. “개똥을 그냥 두다니 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전 이 지역 주민이에요.” 그녀는 마치 그 대답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한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지역 주민이면 당신 개가 길바닥에 똥을 눠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덮을 거예요.” 여인은 짜증스럽다는 듯 대답하더니 발로 옆의 나뭇가지들을 질질 끌어다가 개똥을 덮었다. 눈에 잘 띄던 오물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 똥 지뢰가 돼버렸다. “봤죠?” 여인은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한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어 조용히 그 여성을 내리쳐 죽였다.>
그는 주로 이런 사람들을 죽인다. 상식 없고, 다른 사람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고객에게 불친절한 식당이나 가게 주인, 시민 편의보다는 자신의 안일을 우선하는 관료나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당한다. 죽임은 모면한다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저주는 피하지 못한다.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문을 닫아버린 가게 종업원에게 “이거 하나는 알아두쇼. 당신네가 계약을 망쳤소. 이 뇌라고는 없는 바보들아!”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의 책에는 재미와 지식, 정보가 풍부하다. 여행기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인물, 볼거리, 일화가 넘치며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미시사(微視史)에는 과학·기술과 사생활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역사가 꼼꼼히 담겨 있다. 관심의 폭이 넓어 셰익스피어와 영어발달사에 관한 책들도 냈다.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누구라도 웃음을 참지 못할 유머와 위트로 버무려 풀어내니 페이지마다 서너 번 웃음과 찬탄이 나온다.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한 자’ ‘스스로 갑(甲)이라고 생각하며 그 행세함에 빠지지 않는 자’, ‘앞뒤 모르는 엉터리’들을 무자비하게 풍자하고 비꼬면서 죽여주기까지 하고 있으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다. 재미난 글 좀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그의 필력을 닮으면 된다.
나도 설핏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아는 게 절대 부족하고, 비꼴 줄은 알아도 유머와 위트가 없으니 언제나 심술 철철 넘치는 영감탱이로 그친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맏이일 뿐이며,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던 것도 같은데 저 도저(到底)한 글이라니!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했으니 일찍부터 정보(거의 모두 영어로 된)를 많이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위하는 걸로 넘어가고 있다. 아둔하고 게으른 것은 감추겠다.
하지만 살인 충동은 내가 그보다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다. 첫째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전화하는 사람들이다. 전에는 젊은 것들만 그러더니 요즘엔 노인네나 아줌마들도 자리에 앉기 무섭게 대놓고 떠든다. 다음은 산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다. 휴대전화기 성능이 좋아지면서 뽕짝(노인네, 아재), 힙합(중딩, 고딩, 대딩), 클래식(나이 불문 얼간이들)을 좁은 산길에서 동시에 듣는 때도 있다. 요즘은 도서관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해 두거나, 책 귀퉁이를 접어놓은 자들을 죽이고 있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 담배꽁초를 버려놓은 자, 분리수거일이 아닌데도 버릴 것들을 태연하게 내놓은 자들도 죽인다.
브라이슨은 정치인이나 그들 언저리에서 떨어지는 것 주워 먹던 인물들은 죽이지 않았다. 너무 많아서였나, 죽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서였나?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만큼 저질이 아니어서 그랬나? 나와는 다르다. 나는, 늦게 밝혀 민망하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창조경제’ ‘문화융성’ 이런 말 나돌 때부터 그들을 죽이기 시작해 참으로 많이 죽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좀비인 줄은 몰랐다. 죽여도 죽여도 또 나타나는 좀비들! 이제는 그만 나타나야 할 텐데….
브라이슨의 책을 읽으면 많이 배우게 된다. 이번에 배운 건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Cruger Effect)’다. 1999년 코넬 대학 교수 더닝과 제자 크루거가 발표했다. “쉽게 말하자면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이론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도 능력 부족으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브라이슨은 이렇게 설명하고 “지금 세상을 꽤 잘 묘사하고 있는 이론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 꼭 들어맞는 이론이다”를 덧붙이고 싶다.
그는 깔끔하게 글 쓰는 사람답게 틀린 글자나 표기를 참지 못한다. 도로표지판에 ‘United Kingdom’(영국)을 ‘Uk’라고 써놓은 걸 보고는 ‘UK’로 쓰도록 가르치지 않은 교사들을 저주한다. 책 곳곳에 이런 지적이 나온다. 못 말리는 교정본능(校訂本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