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금리 채권 남발하더니…美연준 이어 ECB도 출구전략 ‘긴축’ 새 복병
야누스 캐피털의 펀드 매니저인 ‘채권왕’ 빌 그로스가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앙은행들을 이처럼 정면 비판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계속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이에 따른 불확실성의 화살이 중앙은행들로 향하는 모습이다.
그로스는 서한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수조 달러 규모의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남발했다며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 경제전문방송 CNBC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이같은 도박을 계속 하려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블랙스완 혹은 그레이스완이 발생할 위험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블랙스완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한 번 일어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이다.
그로스는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띄우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양적완화를 확대한 것이 결과적으로 부작용을 낳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발행된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가 1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시장에서 추정한 11조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이에 대해 그로스는 “마이너스 금리에 지친 투자자들이 결국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등지는 대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리스크가 적은 투자처를 찾아 나서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대체 투자처로 금,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 등을 꼽았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지속적인 판돈 키우기가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한다고 꼬집었다.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이 확대되고 마이너스 및 제로 금리 정책이 지속되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기능, 즉 리스크와 그에 따른 수익에 기초한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점점 더 가로막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로스는 모 아니면 도 식(홉슨의 선택), 혹은 이보다 더 가혹한 ‘소피의 선택’과 같은 상황은 결국 파국적인 결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결코 좋게 끝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로스가 이같은 비판을 쏟아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서한 내용은 이날 ECB 내부 인사들 사이에서 ECB가 내년 3월 양적완화 기간 종료 전에 단계적으로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을 시행할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공개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ECB가 내년 3월까지인 양적완화 기한을 6개월 더 연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큰 상태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테이퍼링설이 나오면서 시장도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그동안 ECB는 지지부진한 물가를 끌어올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차원에서 파격적인 양적완화를 진행해왔다. 이 영향으로 유로존의 국채 금리는 대부분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달 ECB의 양적완화 규모가 1조 유로를 돌파하며 시장에서 매입할 채권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와 ECB의 양적완화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2013년, 연준이 출구전략 차원에서 3차 양적완화의 일환으로 추진한 자산 매입 규모를 월 100억 달러씩 축소하기로 했을 당시에도 시장은 요동쳤었다.
일본은행은 물가 상승률이 2%에 이를 때까지 양적완화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녹록지않다. 지난 2013년 4월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양적·질적 금융완화를 도입했으나 불과 3년여 만에 시장에서 국채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자국 경기 회복을 이유로 추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엿보고 있어 시장은 불안하기만 하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11월 금리인상이 가능하다고 밝혔고,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은 총재는 4일 강연에서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정시키려면 선제적인 금리인상이 중요하다”며 “현재 고용과 물가 정세를 감안하면 금리는 최소 1.5% 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