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실효환율 15개월만에 최고
원화 실질실효환율이 1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그렇잖아도 한진해운 사태로 1년8개월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던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는 악재를 하나 더 얹은 꼴이 됐다.
△ 실질실효환율 1년 3개월만에 최고…中ㆍ日에 가격경쟁력 뒤쳐져 = 20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8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12.06을 기록해 전달대비 1.66% 올랐다. 이는 지난해 5월 기록한 113.29 이후 최고치다.
실질실효환율이란 세계 61개국의 물가와 교역비중을 고려해 각국 통화의 실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로 2010년 100을 기준으로 그 수치가 높으면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악화됨을, 낮으면 강화됨을 의미한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달 초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인 ‘AA‘로 상향조정하면서 외국인 자금이 몰렸던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 신용등급 상향에 따라 달러 공급이 원활했던 탓에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출 라이벌인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또 다른 경쟁국인 일본 역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중국의 8월 실질실효환율은 전달대비 0.74% 내린 120.85를 기록, 6개월 연속 하락했다.
일본의 8월 실질실효환율은 전달대비 2.22% 상승한 84.41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연속 오름세지만 기준선인 100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위안/원 실질실효환율은 92.73으로 2014년 9월 94.4 이후 1년 11개월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엔/원 실질실효환율도 132.76을 기록, 일본과의 가격경쟁력이 2012년 말 이후 계속 밀리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불황에 환율 여건까지 좋지 않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우리의 수출 악화가 우려된다”며 “경상수지 흑자가 커 계속해서 원화 절상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과 수출 경쟁력과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11월과 올 7월 금융통화회의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과 수출의 관계가 많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교역량 부진, 글로벌 공급체인 변화 등이 상당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며 “수출경쟁력은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기술경쟁력도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 정부의 간접 환율정책ㆍ기업의 제품 경쟁력 필요 = 전문가들은 적절한 환율 정책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높은 제품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이 본격화된 탓에 정부가 섣불리 나서 환율에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지난 4월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을 환율 조작 여부를 감시하는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에 직접 개입이 어려워진 만큼 정부는 원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방안과 해외투자 비율을 높이는 방법, 국제 외교를 강화하는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게는 환율이나 가격에 의존하지 않는 품질 경쟁력 개선이 요구된다. 이창선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해 가격에 의존하지 않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