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마시오 레칼카티,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입력 2016-09-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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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는 경쟁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상징적 권위가 무게와 힘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추락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책을 여는 작가 마시오 레칼카티는 이탈리아의 주목받는 심리학자이자 심리분석가이다. 그의 저서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책세상)은 부모와 자식, 더 구체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재해석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불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배해 왔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적으로 삼고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간주한다. 두 사람 사이엔 갈등과 알력과 반목이 지배하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패러다임으로 그동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로 대체해야 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아들로 온갖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린다.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바다를 살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배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아버지가 돌아와, 파렴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의 집과 재산을 빼앗고 왕위를 가로채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희롱하며 혼인을 강요하는 귀족 출신의 난봉꾼들을 몰아내고 정의를 실현할 날만을 기다린다.”

저자의 주장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맞서 싸워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버지는 자신의 땅에 ‘말의 계율’을 가져올 희망의 존재다. 특히 욕망이나 반항, 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의 심리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심리학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 책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초한 현대 정신분석학의 기초 개념을 무너뜨리면서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인간 심리와 소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아버지는 함대를 이끌고 금의환향하는 모습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아들이 발견하는 아버지는 고국을 잃은 허름한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 훨씬 현실적인 아버지의 상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이 텔레마코스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선과 악,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적이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대답할 줄 모르지만 스스로의 삶을 통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아버지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은 어른다운 어른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세대의 혼동’이라고 표현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도 주관적 책임감을 상실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SNS에는 아이들과 똑같이 게임하고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새로운 어른들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어른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어른과 인생을 일종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보고 즐기기만 하려는 어른으로 양분되고 있다.” 진정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젊은 세대의 고독은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고충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지적은 인상적이다. 스스로 책임지기도 힘든데, 아들에게 어떻게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읽는 데 좀 어려운 감이 있지만 아들과 아버지, 한 걸음 나아가 현대사회의 특성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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