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절벽 직면한 중앙은행들] 금리인상 신호만 던지고 또 연기?… ‘양치기 소년’ 된 연준

입력 2016-09-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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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신뢰성 문제 있다는 의미”…경제지표 부진 9월 인상 힘들듯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둔화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미국 대통령 선거, 널뛰는 유가, 중동발 테러 등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가운데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비대해진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시장의 실망감만 더해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금리인상을 위한 여건이 강화됐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 경제정책회의에서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이처럼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옐런이 강연을 마친 지 불과 2시간 만에 뉴욕증시는 상승했고 미 국채 금리는 떨어졌다. 연준의 금리인상 신호를 시장은 믿지 않은 것이다. 곧이어 나온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미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S&P500지수는 전날보다 소폭 하락하고,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5베이시스포인트(bp)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종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연준이 작년 말, 9년 반 만에 금리인상을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미 금융당국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때마다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최고위 결정권자의 발언에도 시장이 이처럼 냉담한 반응을 보인 건 연준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지난 수년간 연준은 금리인상 힌트를 줬다가 철회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조장해왔다. 올해만 해도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정책 성명에서 해외 및 금융 리스크에 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시장으로 하여금 6월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나 6월 고용지표가 예상 외 부진을 보이면서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작년 연말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당시, FOMC 위원들의 금리인상 전망을 담은 ‘점도표’에는 2016년 금리인상은 네 차례 있을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올해 8개월이 지나도록 연준은 아직도 인상 시점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9월 FOMC를 앞두고, 이 같은 상황은 재연될 조짐이다. 지난 2일 발표된 미국의 8월 비농업 부문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오면서 이달 FOMC에서의 금리인상을 점치는 목소리가 다시 수그러든 것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비농업부문 고용은 전월보다 15만1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앞서 시장에서는 약 18만 개 증가를 예상했었다. 같은 달 실업률도 4.9%로, 예상치인 4.8%보다 나을 게 없었다.

시장에선 이미 9월 인상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11월 미국 대선 등 대형 이벤트가 예정돼 있어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9월보다 12월이 적합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금리인상 시점에 관계없이 시장은 연준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 둔화가 10년 남짓 계속되면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연준의 존재감도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WSJ는 세계 경제를 침체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원흉인 주택 버블을 예견하지도 못하고, 물가상승률 목표치 2% 달성도 지지부진, 그런 와중에 효과도 미미한 채권 매입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연준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혔다고 분석했다.

특히 예정했던 금리인상 시기를 여러 차례 연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연준의 신뢰도 추락은 ‘Fed Up(지긋지긋하다)’ ‘End the Fed(연준을 없애라)’ 같은 비난 구호까지 만들어냈으며, 급기야 민주·공화 양당은 연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거나 권한을 제한하자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준의 수장인 옐런 의장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4월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옐런 의장에 대한 신뢰가 ‘매우 있다’ ‘꽤 있다’라는 답변율은 38%였던 반면, ‘거의 없다’ ‘전혀 없다’는 답변율도 35%나 됐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에 대한 지지율이 70%가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초라한 성적이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는 지난달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기대처럼 안 되는 일이 많다”며 “경제와 금융시장은 우리가 상정한 만큼 안정되지 않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전문가들은 어쨌든 연준은 금리인상 시기와 무관하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 금리인상 시점을 둘러싼 투자은행들의 도박은 또 시작됐다. 골드만삭스는 4일, 이달 금리인상 확률을 55%로 상향하는 한편, 모건스탠리는 미국 고용시장 부진과 인플레이션 압력도 없어 이달에 금리 변경은 없을 것으로 각각 내다봤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이달 금리인상 확률은 100%에 가깝다”고 확신하는 반면, 그가 세운 채권펀드 퍼시픽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PIMCO)는 “이달 움직임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견해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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