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차장
소비자기본법은 제1조(목적)에 이 법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법은 소비자의 권리와 피해 구제를 위한 교환·환급 규정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물품 등의 결함으로 인해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위해를 끼치거나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수리·교환·환급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제조·수입·판매·제공의 금지 등 필요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조·판매사와 소비자 사이의 마찰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정부가 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탓이다. 강제성이 약하고 처벌 조항마저 제한적인 것도 이유다.
그래서 여야는 19대 국회 4년 동안 무려 22건의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비자의 권리 범위를 넓히고 강제 규정을 담은 것들이다. 그러나 실제 국회를 통과한 건 단 4건뿐이다. 단순 변심에도 교환이나 환급을 해주도록 하거나, 집단소송제 도입 등 핵심적인 내용은 모두 빠졌다. 이슈만 터지면 이목을 끌기 위해 법안을 쏟아내고는 정작 심사는 졸속이었다.
20대 국회 들어서도 이케아 서랍장 유아 사망 사건과 폭스바겐 사태 등을 계기로 소비자 위주의 법안이 앞다퉈 제출되고 있다.
가장 먼저 발의된 법안은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이다. 사업자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모든 동일한 제품에 대해 국외에서 결함이 발견돼 리콜을 실시하면 국내에서도 똑같이 리콜을 실시토록 했다. 이른바 ‘글로벌 호갱 방지법’으로, 리콜에 인색한 자동차도 예외 없이 적용토록 하고 있다.
그동안 교환·환급의 성역으로 불리는 완성차 회사에 제동을 건 ‘한국판 레몬법’도 등장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소비자기본법이 아닌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결함이 있는 차량을 교환·환불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기본법만으로 제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같은 당 이헌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는 법안 등 다수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각기 법안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소비자기본법의 취지에 충실한 내용을 담아냈다.
일각에선 소비자 권익만 강조하다 보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소비자 권익을 강화할수록 소비심리는 살아나게 돼 있다. 멀리 보면 경제가 선순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법안들이다. 기업이 조금만 감내하면 결국엔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줄 것임에 분명하다. 무엇이 기업과 소비자가 공생하는 길인지 현명한 답을 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