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8월 1일 임경업-명·청 교체기, 청나라와 대립하다 죽은 조선의 장군

입력 2016-08-0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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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임경업은 1594년 출생해 1646년 8월 1일 세상을 등진 조선의 명장이다. 호는 고송(孤松), 시호는 충민(忠愍).

충북 충주시(혹은 평남 개천군)의 무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24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1624년 이괄의 난을 평정해 일등공신이 됐다. 정묘호란이 나자 청북방어사 겸 영변부사가 돼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지었다. 명나라 조정에 반대해 난을 일으킨 반란군을 토벌해 명나라에서도 벼슬을 받았다. 병자호란 땐 백마산성에서 청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청군이 성을 우회해 서울로 진격하자 청군을 추격하기 위해 조정에 원병을 요구했다. 하지만 원병이 오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청이 명을 정벌하기에 앞서 조선에 파병을 요구하자 수군장으로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으나 오히려 명과 내응해 청의 작전을 방해했다. 그는 명과 교역도 계속했다. 결국 이 사실이 드러나 청으로 끌려갔으나 이송 도중에 도망가 명으로 망명했다. 명으로 간 그는 명군 장수가 돼 청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 이후 명이 망하자 결국 청에 붙잡혔다. 청은 그에게 목숨과 부귀영화를 약속하며 회유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청도 이에 감동해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둬두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연금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조선에서 좌의정 심기원의 모반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연관됐다는 죄명으로 국내로 송환돼 고문받다가 죽은 것이다.

계속 청과 대립하다가 제대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역적이 돼 유명을 달리한 그를 안타깝게 여겨 그에 대한 많은 설화가 전하고 있으며 ‘임경업전’(작자 미상)이란 소설도 나왔다. 그러나 “사대주의적 명분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시대적 감각이 뒤떨어졌다”는 평가(출판인 박영규,‘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도 있다. 그는 1697년에 복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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