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혼밥’은 정말 비정상일까

입력 2016-07-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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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학교 다닐 때 ‘결손 가정’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교사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 단어에 상처받는 학생들이 많았다. 신문 등 언론도,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지만 자녀들이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잘 자라는데도 이 가정은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와 이웃, 그리고 언론에 의해 결손 가정으로 낙인찍힌다.

이 가정의 자식들은 더 나아가면 ‘아비 없는 후레자식’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결손(缺損)’은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완전하지 못함을 의미하는데 가정의 결손 여부는 오로지 자녀의 부모 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판난다. 참 문제 있는 규정이다.

대안 가족 등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급증했다. 남편, 아내, 부모, 자식 등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변했다. 이혼, 사고 등으로 전통적 가족 해체도 늘었다. 그런데도 부모와 자식이 있는 가정을 유일한 정답으로 정해놓고 여기서 벗어나면 결손 가정으로 오답 처리한다. ‘결손 가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현실 속에서 못된 힘을 발휘하며 왕성하게(?) 편견과 왜곡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 편견과 왜곡으로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린다.

요즘 TV를 비롯한 미디어가 펼쳐 보이는 혼자 식사하는 ‘혼밥’ 모습에는 ‘결손 가정’의 전철을 밟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뉴스에서부터 다큐멘터리, 드라마,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까지 요즘 TV는 혼밥으로 넘쳐난다.

“혼밥은 가난하고 외로운 도시 젊은이들의 세태” “혼밥은 영양 불균형으로 비만과 우울감 등을 초래하는 식사 행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혼밥” “혼밥은 어려운 경제를 반영하는 현상” “혼밥은 공동체적 삶의 붕괴의 한 단면” “혼밥은 분절되는 사회와 인간상을 드러내는 끔찍한 일” “혼밥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을 디자인하는 TV를 비롯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혼밥의 모습들이다.

미디어 속 혼밥은 위로받아야 할 외로운 젊은이 혹은 가난하고 고독한 노인의 삶의 표상이다. 미디어는 또한 혼밥을 일상성에서 벗어난 이색적인 신기한 문화로 해독한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혼밥은 비정상적인 개인의 삶의 은유이자 공동체 와해의 불길한 전조의 상징이다. 밥은 두 사람 이상 먹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혼밥은 우리 사회에선 오답이다.

미디어 속 혼밥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동대신문(동국대)이 2015년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혼밥 실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가 혼밥을 한다고 답했고 과반수에 달하는 학생들이 1주일에 3회 이상 혼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은 7%에 불과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가족의 기원’에서 밝혔듯 가족은 사회, 경제적 토대에 의해 능동적으로 변한다. 가족의 변화와 밀접한 식사 문화도 마찬가지다. 혼밥은 가족과 사회 변화의 산물일 뿐이다. 혼밥은 공동체를 와해하고 사회를 무력화하는 현상이 아니다. 혼밥은 결코 비정상이나 오답이 아니다. 문화평론가 김교석의 분석처럼 혼밥의 일상화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어딘가 속하거나 함께해야 안심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분리불안 정서를 극복하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요즘 인터넷에선 혼밥 레벨 테스트가 유행이다. 1단계 편의점에서 라면 먹기, 2단계 푸드코트에서 메뉴 골라 먹기…7단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먹기, 8단계 고깃집에서 혼자 먹기, 최고 단계 9단계는 술집에서 혼자 마시기, 즉 ‘혼술’이다. 9월 5일부터 혼밥의 최고 단계인 혼술을 소재로 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가 방송된다. 어떤 모습으로 혼술이 그려질까.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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