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집안을 밝히지 말라는 사회

입력 2016-07-05 14:08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교육부는 두 달 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시부정 의혹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최근 3년간(2014~2016학년도)의 로스쿨 합격생 6000여 명의 입학 과정을 전수 조사한 결과 자기소개서에 부모나 친·인척 신상을 적은 사례 24건이 적발됐다는 것이다. 검사장·판사·변호사 자녀 등 법조인 가족이 16명이었고, 공무원 자녀 4명, 전직 기초자치단체장·공단 이사장·로스쿨 원장·시의회 의원 자녀가 각 1명이었다. 또 25개 로스쿨 중 17곳(68%)이 불공정 입시를 시행한 의혹이 있어 경고 또는 주의 조치했다고 한다.

이 학생들이 부모의 직업 덕분에 합격했다고 볼 수는 없다. 각 대학은 자기소개서뿐 아니라 영어 성적, 학부 성적, 면접 등 다양한 전형 요소를 활용해 합격자를 선발하므로 교육부 발표대로 ‘부모 직업 덕택에 합격했다’는 인과관계는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문제는 신상 기재 금지를 고지하고도 이를 위반한 지원자를 합격시킨 대학들이다. 그래서 이들 대학은 교육부의 기관 경고와 관계자 문책 조치를 받았다. 신상 기재 금지를 고지하지 않은 대학들에도 기관 경고와 법전원장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교육부는 자기소개서에 부모 이름이나 직업·직위 등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기재할 경우 불합격 처리하는 내용의 개선 방안을 8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거 우스운 일 아닌가? 사람을 평가하거나 학생을 선발할 경우 그가 자라온 환경과 집안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위나 며느리를 고를 때에도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는지 알아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법조인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라면 법조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고 직업에 대한 이해도 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부정과 비리를 예방하고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만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다. 교육부의 조사도 지난해 말 사법시험 존치 논란이 불거지고 국회의원의 ‘아들 로스쿨 구제 청탁’ 의혹이 제기되자 실시된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채용 문제도 그렇다. 국회의원들이 보좌관을 채용하면서 임금을 착취하는 게 문제이지 친인척이라고 해서 무조건 채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당규로 ‘삥뜯기’를 제도화한 정당도 있다. ‘4급 보좌관은 50만 원, 5급 비서관은 30만 원’ 식으로 매달 돈을 뜯으면서 ‘특별당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서영교 의원처럼 친가족을 줄줄이 국회의원 사무실에 채용해 국민 세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린 행위는 ‘보좌관 삥뜯기’보다 훨씬 무거운 ‘세금착취’ 범죄행위다.

보좌관들은 실력이 없으면 버티지 못한다. 국회의원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전문적이며 더 많은 일을 하는 게 보좌관들이나 국회 전문위원들이다. 취직이 어렵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아 조금이라도 비리나 부정이 생길까 봐 감시하려다 보니 자기소개서의 부모 직업 기재 금지, 친익척 보좌관 채용 금지와 같은 제도를 만들게 됐지만 이게 일률적으로 다 옳고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야의 잇따른 친인척 보좌진 채용 문제가 불거지자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의 친인척 채용 금지 논의 범위를 기존의 4촌에서 8촌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제도화보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실질적으로 의원들의 일을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느냐 여부다. 친인척이든 누구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을 쓰고 임금을 뜯지 말고 제대로 지급하는 게 중요하다.

성숙한 사회는 남을 배려하는 사회이며 매사 사려와 분별이 뛰어난 공동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판단과 분별을 잃고 있다. 모든 게 일률적이고 기계적이고 신경질적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