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보건복지부도 지난 3월 21일 암 예방의 날에 음주수칙을 바꿔버렸다. 종전엔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만 마시기’라고 살살 달래더니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돌변했다. 지속적인 소량 음주도 암 발생을 높일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음주단속’에 나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술 끊어!”다.
EU(유럽연합)는 우리보다 2년 앞서 ‘남자 두 잔·여자 한 잔 이내’에서 ‘음주하지 말 것’으로 수칙을 고쳤다고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술이 더 세다고 믿을 근거가 있나? 그러니까 맨정신으로 판단하건대 EU의 이번 조치는 성차별적 수칙을 바로잡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가 좀 좋아? 한자리에서 소주 한 병 이상 마시면 암 걸릴 확률이 3배 이상 높다고 하자 한자리에서 마시지 말고 두 자리 세 자리로 옮겨 다니며 마시자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아니, 내가 잘 말하는 식으로 하면 ‘흥론이 불등’하고 있다. 輿論(여론)과 興論(흥론), 沸騰(비등)과 拂騰(불등)은 한자가 비슷해서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한 잔만 마시는 것도 말이 참 어렵다. “술 한잔 하자”고 하면 붙여 쓰지만 마시는 잔을 세려면 한 잔이라고 써야 되니 우리말은 술 마시면서도 띄어쓰기를 생각해야 한다. 한 잔도 한 잔 나름이다. 작은 소주잔도 한 잔, 다모토리도 한 잔이다. 다모토리는 사전에 ‘큰 잔으로 소주를 마시는 일 또는 큰 잔으로 소주를 파는 집’이라고 나와 있다.
조선 성종 때의 저명한 술꾼 손순효(孫舜孝·1427∼1497)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성종이 건강을 염려해 은 술잔을 하사하며 “이걸로 매일 한 잔씩만 마시구려” 했더니 사람을 시켜 술잔을 대접처럼 넓게 펴서 독한 술을 한가득 부어 마시곤 했다고 한다. 다모토리로 마신 것이다.
그런데 술꾼들은 왜 그렇게 매일 마시려 할까.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런던 정경대가 ‘술을 마시면 행복해진다’는 속설을 수치로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맵피니스라는 모바일 앱을 이용한 설문조사에서 사용자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 “지금 뭐 해? 지금 느끼는 행복 수준을 1에서 100점까지 점수로 매긴다면?” 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3년간 3만여 명으로부터 200만 개의 답변을 받아 행복지수를 도출해 보니 술을 마시면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행복지수가 무려 10.79점이나 증가했다! 술 마시면서 축구 경기를 보는 것과 같은 다른 행동을 제외하고 술 마시는 것 자체만 수치화해도 4점 정도가 올라갔다.
음주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이제 알겠지? 그러나 언제까지나 술독에 빠져 살 수는 없는 법. 장기적으로는 출구전략을 짜는 게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요즘 브렉시트로 연일 시끄러운데 알코올엑시트(이게 아닌가? 알코올렉시트라고 써야 하나?)도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