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어느 친구의 꿈

입력 2016-06-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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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 삼성물산 대리.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년마다 한 번씩 우리는 개인정보를 적어서 학교에 제출했던 것 같다. 연필로 쓰면 잘 보이지도 않던 갱지에 적어 넣었던 것들은 다들 비슷비슷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으로 혹은 PC방으로 달려갈 분주한 마음에 적는 데는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개인정보를 적어 제출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선생님에게 교실 앞으로 불려나갔다.

“OO아, 니는 장래 희망을 와 비워놨노?” / “….” / “니가 나중에 되고 싶은 게 뭔데. 내가 적으마.” / “… 아빠요.” / “뭐?”

한껏 교탁에 몸을 숙였던 선생님은 찡그린 얼굴로 허리를 세우고 친구를 쏘아봤다. 몇 초간의 정적 후 누군가 ‘푸훗’ 하는 소리에 온 교실은 떠나갈 듯한 웃음으로 가득해졌고, 선생님의 큼지막한 주먹이 친구 머리 위를 스쳤다.

“니는 꿈도 없고 공부도 안 할라카고 그래가 나중에 뭐 될래?” 이윽고 터진 선생님의 호통에 낄낄거리던 웃음은 금세 잦아들었고, 그 친구는 아무 말을 못하고 계속 바닥만 쳐다봤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철 없던 웃음을 곱씹어 보면 아차 싶은 것이 있다. 그 친구는 할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고 굉장히 가난했다는 사실이다. 도시락 반찬은 늘 파김치뿐이었고 필통에는 주워다 쓴 몽당연필이 가득했다.

외롭고 힘든 시절을 보내던 그 친구에게 어쩌면 ‘아빠’는 가장 간절한 존재였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있는데 나만 없는, 그래서 더욱 갖고 싶은 선물이자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머리를 쥐어박은 선생님, 그리고 자신을 향해 웃는 급우들 앞에서 그 친구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구 하나라도 냉소 대신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주었다면 어땠을까.

중학교 졸업 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때 밝혔던 장래희망인 ‘좋은 아빠’가 꼭 되길 바란다. 적어도 그 소박하고도 가슴 시린 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 돼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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