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부 차장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폭로는 이 문제가 청와대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금융권까지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방아쇠가 됐다.
홍 전 회장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대우조선 지원은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 등이 참여하는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현안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해명 자료를 내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친 것이라고 번복했다.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할 당시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즉각 반박했다. 청와대도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실관계야 어찌 됐건 지난해 10월 4조2000억원의 대우조선 유동성 지원 당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홍 전 회장의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홍 전 회장이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 진화에 나섰지만 정치권에는 ‘서별관 게이트’라는 말이 등장했다. 야3당은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감사원은 모든 책임이 산업은행에 있다고 했다. 산업은행이 재무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대우조선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아 1조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홍 전 회장, 류희경 수석부행장, 정용석 구조조정부문 부행장 등 전·현직 임원 3명에 대한 감사 결과를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금융위에 통보했다. 이들 3명을 대우조선 부실 사태를 키운 중대한 장본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산업은행 노조는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며 이번 사태의 ‘몸통’인 서별관회의 참석자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금융권에는 홍 전 회장의 발언에 일부 동조하는 인사들이 꽤 있다. 홍 전 회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산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의 관행과, 금융이 정부의 규제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리가 있다.
시급한 것은 대우조선의 정상화다. 책임 소재만 따지다 그동안 들인 천문학적인 혈세를 모조리 날릴 수도 있다. 1조원 규모의 추가 지원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국민적 비판 앞에서도 조선·해운 업종의 구조조정을 위해 11조원 규모의 구제금융 펀드를 만들어놨으면,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지에 대해서도 서둘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와 채권단의 추가 구조조정 압박에 대우조선은 물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노조가 파업으로 응수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구조조정은 몇 달째 총론만 거론될 뿐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들어가면 정부와 채권단, 기업이 제각각이다. 정치권은 힘겨루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구조조정 밑그림의 부재는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우조선 부실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당리당략에 이용되면 안 된다. 더욱이 구조조정 현안이 묻혀서는 곤란하다. 한국 경제가 살얼음판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