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형에 누나까지”…급브레이크 걸린 호텔롯데 상장, 공모가 낮아질까

입력 2016-06-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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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호텔롯데)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겠다.”

여드레 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연단에 섰습니다. 그곳은 IPO를 앞둔 호텔롯데의 기업 설명회(IR)를 위한 자리였죠. 발음은 다소 어눌했지만, 그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형제의 난(亂)’을 끝내고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묻어났죠. 등 떠밀린 약속이긴 했지만, 인사말을 마친 신 회장은 연단에서 내려온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행사장에 남아 IR를 챙겼습니다.

8개월 간 켜켜이 쌓인 국민적 실망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가족 소유와 경영 분리’라는 그의 진심만큼은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줘보자”하는 공감대도 퍼졌고요.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요. 호텔롯데 증시 입성을 20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복병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형이 아닌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동생의 ‘원 리더’ 야망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신영자 쇼크…호텔롯데 상장 일정연기’

오늘(7일) 이투데이 3면 헤드라인입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신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입니다. 1973년 호텔롯데 부사장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총괄부사장, 롯데면세점 사장, 롯데쇼핑 사장 등을 맡았죠. 4년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요.

그룹 대소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직원들에게 그는 여전히 ‘큰 회장님 딸’로 통합니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사례로 꼽히는 3년 전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 운영은 그룹 내 신 이사장의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케 하죠.

(출처=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

그런 신 이사장이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면세점 입점을 조건으로 수억~수십억원의 뒷돈을 받았다고 하네요. 검찰 조사가 더 진행돼야 하지만, 의혹이 사실이라면 호텔롯데 증시 입성은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일단, 롯데그룹 측은 상장 일정을 연기하기로 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상장 연기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공모가입니다. 지난주 확정된 롯데호텔의 희망 공모가 범위는 9만7000~12만원인데요. 기업가치 17조9800억원(영업가치 12조9200억원+비영업가치 5조4000억원)을 바탕으로 동종업계 상대가치를 따져 정한 값입니다. 호텔, 리조트, 골프 등 대부분의 사업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당백’ 면세점만 있으면 12만원까지 받을 만하다는 게 그룹 측 생각이죠.

하지만 기관투자자들 생각은 다릅니다. ‘신영자 쇼크’가 터지기 전부터 공모가에 거품이 껴 있다고 지적했죠. 주가수익비율(PER, 32~40배)이 경쟁사인 호텔신라(26.3배)보다 훨씬 높은 데다, 2006년 상장한 롯데쇼핑 현재 주가(7일 종가, 22만4000원)도 공모가 대비 절반 가까이 깎여 있거든요.

만약 이번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월드타워점’이 관세청으로부터 신규특허를 받지 못한다면 기업 가치는 다시 산정될 겁니다. 당연히 공모가도 낮아질 테고요. 한 번 더 기회를 주려고 했던 국민의 질타가 가장 큰 상흔으로 남겠죠.

(출처= 호텔롯데ㆍ삼성증권 리서치센터)

‘롯데’는 괴테(Goethe)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 샤롯데(Charlotte)에서 따온 사명입니다. 창업주 신 총괄회장이 소설에 심취해 이같이 정했다고 하네요. 소설 속 베르테르는 샤롯데를 향한 애틋함을 죽음으로 마무리 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 베르테르(국민)는 다릅니다. 언제든지 샤롯데(롯데그룹)를 떠날 준비가 돼 있죠.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형제간의 골육상쟁, 아흔이 넘어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욕을 지켜보며 베르테르의 마음은 이미 돌아서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샤롯데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베르테르 품에 돌아올까요? 8개월이란 시간도 부족한 가 봅니다.

*친절한 용어 설명: PER이 뭔가요?
현재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주가가 순이익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죠. 예를 들어 A사 주가가 3만원, 주당 순이익이 3000원이면 PER은 10배가 됩니다. PER이 높으면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게 평가된 거고요. 반대로 PER이 낮으면 이익보다 주가가 낮게 평가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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