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가정폭력, 남의 일이 아니다

입력 2016-06-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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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처럼/고주망태 아버지의 잠든 틈을 타 잽싸게 칼을 숨기던 형처럼/빠르게 지나가는 녀석의 그림자//돌아보면/모든 속도가 슬프다”

김주대 시인의 ‘슬픈 속도-도둑고양이 3’이라는 시다. 인기척을 느끼면 깜짝 놀라 번개처럼 몸을 숨기는 고양이의 ‘속도’에 가슴이 아프다고 시인은 얘기한다. 공포에 떠는 생명체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익힌 생존의 기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다.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할 부모나 배우자가 폭력을 휘두른다면, 게다가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면 그 공포가 어떨까? 따뜻한 보금자리여야 할 가정이 지옥이 되고 가족이 죽이고 싶은 원수처럼 느껴진다면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이 아닐까?

지난 5월 8일, 사십대 남매가 칠십대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철저히 계획된 범죄로 그것도 어버이날에 벌어진 사건이어서 더욱 참혹했다. 경찰과 언론 앞에서도 자신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라는 당당함 뒤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한과 분노, 증오와 적개심이 들끓고 있었다. 어두운 가족사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안타깝기만 했다.

가정폭력이라는 범죄의 폐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뇌 손상, 골절, 고막 파열, 실명, 치아 손상 등으로 평생을 장애로 고생하는가 하면 우울증과 각종 정신질환,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적인 피해도 치명적이다.

그리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세대 간 전수는 더욱 끔찍하다. 학대당하고 폭력에 시달렸던 자녀보다 폭력과 학대를 목격하며 자란 자녀들이 성장해 가해자가 되는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정폭력을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일로 치부하고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신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이 신고되었을 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어 치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극도의 공포와 무기력, 수치심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 악순환의 굴레에서 피해자 스스로 탈출하기도 어렵다.

가정폭력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나 직업에 관계없이 발생한다. 가해자 중에는 집 밖에서의 행동과 집 안에서의 행동이 정반대인, 이중적인 사람도 많다. 경찰의 조기 개입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민들의 가정폭력에 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경찰력을 가정폭력 해결에 배치하기도 어렵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날에 부부의날까지,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행사와 이벤트, 상업적 마케팅만 난무하는 한 달이 아니었나 돌아볼 일이다. 몇 푼의 용돈과 선물, 외식 등으로 그동안의 죄책감을 씻기 위한 ‘의무감’만 있었던 가정의 달, 다른 가족들의 불행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이기적인 가정의 달은 아니었는지 반성할 일이다.

나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 누구도 간섭하거나 개입하면 안 되는 그 집안의 일로 방치하고 외면하면 끔찍한 불행이 우리 가족을 덮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귀담아 들어 주고 손잡아 주고 함께 있어 준 온정 덕분에 가정폭력의 끔찍한 상처를 극복하고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돕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도 많다. 가정폭력에 관한 인식 개선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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