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5월 1일 영친왕 이은 귀국도 어려웠던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입력 2016-05-0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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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편집위원

“일본에 가거든 아무리 곤란한 일을 당하더라도 꾹 참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라.” 유학을 떠나는 어린 황태자 이은(李垠)에게 아버지 고종은 이같이 당부한다. 말이 유학이지 볼모나 다름없는 아들을 보내며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일본 유학길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고초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영친왕 이은(1897.10.20~1970.5.1)은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친왕(親王)은 본래 황제가 귀비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그의 어머니는 귀비(貴妃) 엄씨이다.

1907년에 11세 어린 나이로 황태자가 되지만 친일 인사로 만들려는 일본의 계략으로 그해 12월 도일하게 된다. 1915년 일본 왕실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그 후 육군 중장에까지 진급한다. 1920년에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일본 왕족 마사코(方子·한국명 이방자)와 결혼한다. 1926년 순종이 붕어한 뒤 영친왕은 제2대 이왕(李王)에 오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모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다. 그럴수록 그의 침묵은 깊어갔다.

8·15 광복 후 귀국하려 했으나 국내 정치의 벽에 부딪혀 실패하고, 일본 왕족 명단에서도 삭제된다. 미국 이민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195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1962년 한국 국적이 회복돼 이듬해 귀국했으나 병상에 있다가 1979년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났다.

“후회함이 없이 자기 길을 마음껏 가보아라…지금 와서 나더러 마음대로 하라고 해도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장구한 세월 틀 속에 갇혀, 어떻게 하면 자기를 속이고 살아가느냐를 교육받아 왔기에 이제 밖으로 나가려 해도 나갈 수가 없다.” 해방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나는 아들 구(玖)에게 영친왕이 해준 말이다. daehoan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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