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의 전원코드가 끊어져 발생한 화재에는 제조사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외부에 노출된 전기선 문제는 밥솥 자체 결함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조은아 판사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쿠쿠전자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광주시 서구에 거주하는 장모 씨는 2012년 9월 쿠쿠 전기밥솥을 구입해 사용해왔다. 2014년 9월 장 씨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집 내부와 가재도구 대부분이 불에 타고, 복도와 이웃세대에도 그을음을 입었다.
이 사고로 메리츠화재는 장 씨에게 810만원,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23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후 소방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장 씨의 전기밥솥 전원코드에 불이 붙은 게 화재의 원인이라고 결론내렸고, 메리츠화재는 제조사인 쿠쿠전자를 상대로 보험금 만큼의 돈을 지불하라며 지난해 8월 소송을 냈다.
쿠쿠전자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원코드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제조사가 아닌 사용자 부주의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메리츠보험은 "전기밥솥의 전원코드가 끊어져 발생한 화재는 전기밥솥의 결함이 있는 경우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법원은 쿠쿠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조 판사는 "소비자가 제조물 결함과 손해 발생의 인과관계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려우므로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면서도 "전기밥솥 전원코드선에서 발생한 단락흔(끊어진 흔적)이 전기밥솥 자체의 결함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 판사는 "전원코드는 제품 외부에 노출된 부분으로, 수시로 반복해서 전원과 연결하고 해제하는 등의 형태로 이용되므로 이용자의 사용방법 등에 따라 노후화 및 파손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 씨가 2년 전 구입한 밥솥이 화재가 나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고, 국과수 감정 결과 전기밥솥 내부 구성품에는 화재와 연관지을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참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