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의 소곤소곤] 워스트기업 발표 나올 뻔한 사연

입력 2016-04-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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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오죽하면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처럼, 매년 워스트(worst) 기업을 선정하자는 의견까지 나왔겠습니까.”

최근 금융투자협회 주최로 리서치센터장 비상대책 회의에 참석한 한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털어놨다.

워스트 기업 선정까지 운운할 정도로 금융투자 업계가 상장기업들에 분개한 이유는 또다시 벌어진 이른바 ‘하나투어 갑질’ 사건 때문이다.

지난 7일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리서치센터의 센터장들이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하나투어가 자사 목표주가를 내린 애널리스트의 방문을 막겠다고 통보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리서치센터가 상장기업을 상대로 비판은 받아들이되 부당한 압박은 저지해 달라는 것이 골자다. 요 며칠 금투협에서 머리를 맞댄 회의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애초 기대 대비 싱거운 결과물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사실상 업계에선 부당한 갑질을 행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커버리지를 제외해야 한다는 성토까지 불거졌다.

이에 워스트 기업 선정까지 오갈 정도로 며칠간 리서치헤드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워스트 기업 선정은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처럼 보고서나 목표주가 발표 등 선정 근거가 없기 때문에 결국 강도 높은 제재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금투협이 해외 사례 비교 분석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사실 상장사들이 자사의 불리한 내용을 전달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방문을 저지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재 은퇴한 자동차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과거 자동차 굴뚝주로 꼽히는 H기업으로부터 방문 저지를 당했고, 결국 담당 섹터를 바꾸는 굴욕까지 감수해야 했다. 지난해 리서치센터장 협의체를 만들게 한 현대백화점 경영진의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 협박 사건은 재계는 물론 증권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H기업뿐만 아니라 S기업, P기업 등 사실상 섹터별 굴뚝주들은 자사에 긍정적인 진단을 해주는 애널들에게만 미리 실적 정보를 귀띔해주는 등 처우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며 “이번 공동성명 자체는 리서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측면에선 의미가 크지만 과연 실효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기업과 리서치의 관계를 규제나 물리력으로 하기보다는, 스스로 환경을 조성해 상호 존중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진국 역시 리서치와 기업의 문제는 시장과 업계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의거해 기업분석을 하는 것은 리서치 본연의 임무다. 물론 리서치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분석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상장사 역시 합리적인 투자 환경과 투자자들의 권익을 위해 리서치에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 몸에 좋은 약은 삼키기엔 쓰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오히려 체력이 더욱 좋아지기 마련이다. 기업들이 이제라도 자사에 대한 불리한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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