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비례대표는 “기여대표?”

입력 2016-03-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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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독일, 일본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독일의 경우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비례대표를 두는 이유가 표의 가치를 보다 확실히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지역구 출마자의 상당수가 비례대표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경우 비례대표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직능 대표성을 강화하고 지역분할 구도 속에서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자꾸 다원화돼 가고 있어 지역 대표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직능 대표성이어서 비례대표를 두고 이런 다원화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직능집단의 이익을 제도권에 반영하고자 함이라는 말이다. 직능대표성은 단순한 전문성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전문성이 있는 인사도 직능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례대표가 바로 이런 이유로 존재하는데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 비례대표가 왜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과정에서 상당한 점수를 땄다. 이것이 일종의 대비효과 덕분인데, 새누리당은 계파별 갈등과 반목 속에 공천이 이루어져, 구주류 세력인 친이계들이 가차 없이 날아간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주류의 수장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상당수 친노를 공천 탈락시켜 변화하려고 몸부림을 치는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즉, 같은 물갈이라도 더불어민주당은 변화를 위한 물갈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던 반면, 새누리당은 계파 갈등을 통한 물갈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례대표 공천을 보면 이렇게 딴 점수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선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에 포함됐는데 이번에 당선되면 비례로만 5선을 하는 셈이다. 사실 당 대표가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직능대표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실시 이유라면 당 대표가 ‘국회의원들의 이익’을 대표할지는 몰라도 사회의 직능 대표성을 가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당 대표들이 비례대표에 출마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관례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으니 지금 또 그러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잘못된 관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이나 국민의당이나 당 대표들은 모두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야말로 비정상적인 정치적 관행을 끊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점도 있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순위 안에 든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상당수가 직능대표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을 이번에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비례를 줄이네 마네 하면서 진통 끝에 선거구 획정을 마쳐서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를 보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나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서 직능대표성보다는 당에 대한 기여도에 입각한 일종의 논공행상적 성격이 강하다는 말이다.

이럴 바엔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가뜩이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서울의 몇 배 되는 지역구가 존재하는데, 이럴 바엔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고 농어촌 지역구를 늘리는 것이 대표성을 생각할 때 더 낫다는 말이다. 기여대표제로 전락한 비례대표제를 바라보며,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 명분보다 정치공학적 전략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고 충성도를 보인 인물들이나 공천하는 지금의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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